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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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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바이칼호 주변에서 발달한 차가운 대륙성 고기압이 우리나라로 접근하면서…." 해마다 이맘때면 흘러나오는 일기예보다. 세계 최대의 담수호인 바이칼호는 겨우내 꽁꽁 언다. 그래도 주변 지역보다 기온이 훨씬 높다. 이로 인해 차가운 시베리아 북쪽의 공기가 바이칼호 쪽으로 밀려들면서 강풍을 동반한 한파가 극동지역을 덮치게 된다.

지구상의 대표적 극한지는 남극이다. 바다에 위치한 북극보다 대륙인 남극이 더 춥다. 두께 2㎞가량의 얼음으로 덮여 있어 해발 고도도 높다. 1960년 8월 24일 남극 대륙의 러시아 실험기지인 보스토크(해발 3488m)에선 영하 88.3도가 관측됐다. 시베리아 동부의 베르호안스크 주변에서 관측된 영하 68도보다 훨씬 낮다.

추위에 바람까지 불면 체감온도는 더 떨어진다. 피부의 열손실 때문이다. 영하 10도에서 시속 5㎞의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는 영하 13도이지만 시속 30㎞의 바람이 불면 영하 20도로 떨어진다. 체감온도 영하 25도 이하의 추위를 '살인추위'로 분류한다. 노출된 피부는 15분 이내 동상이 걸린다. 체감온도가 영하 45도 이하면 피부가 몇 분 안에 얼어붙고 영하 60도 이하에서 바깥 나들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미 육군 환경의학연구소에 따르면 강추위에 노출되면 저체온증으로 인체의 운동기능이 급속히 떨어진다고 한다. 특히 뇌 조직의 온도가 2도 이상 떨어지면 정신착란 증상을 유발한다. 뇌의 화학반응에 혼선이 생겨 틀린 정보를 전달하기 쉽다. 대표적인 이상 행위가 옷 벗기다. 강추위로 인한 정신착란으로 더위를 느끼면서 옷을 벗어던지기 일쑤다.

보름 가까이 지독한 초겨울 한파가 들이닥쳤다. 북극에서 영하 45도의 찬 공기주머니가 한반도 상공으로 내려와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인천에선 술을 마신 여중생이 저체온증으로 구토를 하며 숨졌다. 그렇다고 방에만 갇혀 지낼 일이 아니다. 내일모레가 동지다. 동짓날이 제대로 추워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인간은 추위에도 적응하는 동물이다. 시베리아에선 영하 20도는 추위도 아니다. 해만 뜨면 어린이들이 길가에서 뛰논다. 이에 비해 지난주 인도에선 15명이 추위로 목숨을 잃었다. 인도 언론들은 "영상 3도의 살인적인 한파가 습격했다"고 야단이다. 기상청은 "오랜만의 한파지만 이상한파는 아니다"고 한다. 그래도 15한(寒)0온(溫)은 너무했다. 삼한사온이 그립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