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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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서울의 명물로 등장한 지하보도는 한번쯤 걸어 볼만하다. 햇볕이 따가운 한낮이면 도심 왕래로는 십상이다.
환기도 그만하면 상쾌한 편이고, 설계도 되는대로 한 것은 아니다. 조명하며 배색에 벽돌, 타일의 모자이크, 모두 신선감을 준다.
단순히 「새롭다」는 뜻이 아니다. 평소 디자인이나 무드, 미적 감각과는 담을 쌓은 듯한 도시 경관에 이골이 난 시민들은 조그마한 변화나 시도만 봐도 쉽게 감동을 받는다. 아름다움에 그만큼 굶주려있는 것이다.
그런 시민들의 눈에 지하보도의 풍경은 분명히 인상적이다. 『서울도 이젠 얼굴을 갖기 시작하는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것은 겉보기 인상일 뿐 조금만 눈여겨 그 구석구석을 보면 『아직도…』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타일이 울퉁불퉁한 것은 보통이고, 모서리가 째진 것, 금간 것도 예사로 붙여 놓았다. 시멘트나 백회가 묻어야할 자리를 적당적당 내버려둔 경우는 부지기수다. 돌계단이 부서져 이 빠진 모양을 한 것도 볼 수 있다.
적어도 「기하학적인 미」의 수준은 갖추어야할 것이다. 직선은 곧아야하고, 평면과 수평은 유지되어야한다. 육안으로 보아도 그 정도는 돼야한다.
이것은 결국 예산이나 설계의 문제가 아니다. 첫째는 그 공사를 하는 기능인들의 직업적 불성실이 문제고, 둘째는 그것을 감독하는 사람의 무책임 문제다.
이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정신적 단면을 보는 것도 같다. 무슨 일을 해도 끝마무리가 엉성하고, 매사를 대충대충 건성으로 처리해 버리는 악습이랄까, 태만이랄까.
미국 사람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모럴(도덕감)과 머랠(사기)의 문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선진」의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선진 그 자체를 성취하려면 아직도 모든 분야에서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타일 한장 붙일 때도 자신의 직업적 긍지와 사명과 책임 갖고 누가 보든 말든 제대로 해내는 정신구조. 이것이야말로 선진을 이루는 첫째의 조건이다.
이것은 시설물이라는 하드웨어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정신, 곧 소프트웨어에서도 마찬가지다. 타일 바닥이나 계단에 가래침과 껌을 뱉어버리는 일은 실로 지하보도 미관과는 너무도 걸맞지 않는다.
시간과 경험의 축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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