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칼럼] 100만 공무원도 힘겨운 반퇴시대 직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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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선임기자

최근 공무원을 많이 만났다. 이들은 변함없이 각자 맡은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예산 투입에 비해 효과를 많이 낼지,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계속 탐색했다. 현재 맡고 있는 일에 대한 의무감과 보람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한담으로 넘어오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불안감 속에는 공허와 좌절, 자포자기 같은 느낌도 뒤섞여 있는 것같았다. 먼저 A공무원이 털어놓은 속내다. “이젠 어디 가지도 못한다. 현직에서 최대한 일을 하고, 나중에 창업이나 해야겠다. 지금은 일을 하더라도 늘 그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아직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 개발할 여지가 많다.” 사흘 후 다른 자리에서 만난 공무원 B와 C 역시 비슷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공무원 B가 “퇴직해도 어디 갈데도 없고, 공무원 연금도 깎이게 생겼다. 선배 공무원들은 기회가 많았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내놓고 있다.”

100만 공무원도 힘겨운 반퇴시대 직면

공무원들도 길고 힘겨운 반퇴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공무원 정년은 현재 60세여서 민간보다 길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민간의 정년이 60세로 의무화하면서 같아진다. 공무원의 정년 비교우위가 없어지는 셈이다. 물론 공무원은 ‘철밥통’을 갖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무원은 이른바 ‘신분보장’이 강하다. 비리에 연루되기 전에는 정년을 채운다. 반면 민간기업은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 조기퇴직을 실시한다. 경영이 불가능해질 정도가 되면 정리해고를 피할 수 없게 되고, 기업이 아예 망하면 일자리가 저절로 없어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공무원의 고용안정성은 민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탄탄하다. 그러나 백세시대에 접어들면서 공무원의 노후도 흔들리고 있다. 공무원은 지금까지 정년이 길어서 노후를 안락하게 보내다가 생애를 마감하면 됐다. 4급 이상 간부직 공무원은 정년 이후에도 각종 산하 기관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 길게는 70세 가까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장차관을 지낸 고위직 공무원은 일할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무슨 협회다 공단이다 해서 이사장과 회장·부회장 자리는 도처에 널려 있었다.

고위 공무원은 퇴직 후 낙하산 타기 어려워져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공직자의 낙하산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서 낙하산을 타기 어렵게 됐다. 결국 60세가 되면 어쩔 수 없이 퇴직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그 여파는 크다. 1급 이상 고위공직자가 지원할 수 있는 계약직 대학교수 자리는 전에 없이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원래 이 자리는 민간기업 고위간부 출신도 지원할 수 있으나 요즘엔 경쟁이 치열해져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있다. 공무원 C는 “요즘엔 퇴직하고 집에 놀고 있는 공무원들이 많은데 계약직 대학교수직도 따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제 공무원도 퇴직해도 은퇴하지 못하는 반퇴시대를 살아야 한다. 여기에 적응하려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자격증이라도 따놓 게 합리적이다. 과거에는 담당분야에 일정 기간 종사하면 공무원에게는 자격증이 나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자격증도 관리가 엄격해져 경력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워졌다. 둘째는 은퇴 크레바스에 대한 대비 강화다. 지난 번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2010년부터 공무원에 임용되는 사람들은 수급개시 연령이 65세로 늦춰졌다. 60세에 퇴직하면 5년 간은 딱히 재산이 많지 않다면 소득없이 지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가 정상화되면서 낙하산을 타고 갈 만한 자리가 없어지고 연금도 65세부터 나오므로 퇴직 후 소득공백이 길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1996~2009년 사이에 임용된 공무원의 연금 수급은 60세부터다. 그 사이에 개인적인 일로 퇴직이라도 한다면 은퇴 크레바스를 피해가기 어렵다.

젊은 공무원은 퇴직 후 은퇴 크레바스 최장 5년

이에 대비하려면 공무원도 재테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얼마를 모아놓은 식의 재테크가 아니라 90세, 100세까지 월급 탈 수 있는 금융자산의 준비가 필요하다.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으나, 현재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성장 시대에 들어가면서 세수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공무원연금 적자분을 재정에서 보충해주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비스마르크가 연금을 도입할 때 평균 사망 연령이 49세였다. 그 때 지급개시 연령이 65세였다.

현재 공무원연금은 이에 비하면 지속가능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는 것보다 수배로 많이 받아가도록 설계돼 있는 데다 기대수명이 늘어나 90세까지 생존하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공무원연금이 조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지금 대한민국에선 공무원 시험 열기가 뜨겁다. 공무원이 민간 직장인에 비해서는 고용안정성은 물론이고 여러 면에서 장점이 있다는 반증이다. 이렇게 장점이 있지만 60세 이후 인생 이모작의 여건이 어려워지는 것은 공무원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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