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외교관이 누리는 면책특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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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방글라데시 다카공항에서 북한 외교관이 140만 달러(약 15억원) 상당의 금괴 27㎏을 밀수하다 적발됐다. 하지만 이 외교관은 북한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외교관에게 부여된 신체불가침과 형사재판면제권 등의 특권 때문이었다.

 외교관들이 특별 대우를 받는 근거는 1961년 4월 만들어진 외교관계에 대한 빈 협약이다. 빈 협약은 “개인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공관 직무의 효율적 수행을 보장하기 위해 외교관들에게 각종 특권을 제공한다”고 정해놨다. 건국대 법률전문대학원 박병도(국제법) 교수는 “외교관에 대한 특권을 부여한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 시작된 오래된 관습”이라며 “유엔 출범 이후 각종 관습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 결과물 중 하나가 빈 협약”이라고 말했다.

 외교관이 가진 특권 중 가장 대표적인 건 ‘신체불가침’이다. 외교관은 접수국(接受國·외교사절을 받아들이는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어떤 형태의 체포 또는 구금도 당하지 않는다(빈 협약 29조). 현장에서 외교관 신분이 확인되면 연행할 수도 없다. 외교관들의 가족도 신체불가침 특권을 적용받는다. 접수국에서 죄를 지어도 그 나라의 법정에 서지 않아도 된다. 형사재판관할권과 민사재판관할권의 면제 특권 때문이다(빈 협약 31조). 민사재판의 경우 예외가 있다. 외교관이 그 나라에서 개인 소유로 갖고 있는 부동산이나 재산, 영리 목적으로 벌인 사업에 대한 소송은 법정에 서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특권이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접수국에서의 재판 절차에서 면제가 될 뿐이지 법적 책임은 그대로 남는다. 예컨대 한국 외교관이 미국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미국에서 재판은 받지 않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국립외교원 조정현 국제법 교수는 “외교관이 접수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본국으로 돌아갔을 경우 해당 국가 사법 당국의 판단에 따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증거 수집 등 절차적인 한계가 있어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법 적용에서도 외교관은 특별 대접을 받는다. 우리나라 형법 제108조는 “외국사절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며 외교관에 대한 적용을 따로 규정해 놓았다. 마크 리퍼트(42)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55·구속)씨도 이 법의 적용을 받아 구속됐다.

 외교관의 특권은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재외공관과 외교부 본부 사이에 공공 물품이나 문서를 주고받는 가방인 ‘외교행낭’도 특권을 누린다. 외교행낭은 내부에 마약이나 무기가 있다는 첩보가 있더라도 임의로 검사할 수 없다. 반드시 해당국 외교관의 동의를 받아 검사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외교행낭은 종종 밀수에 악용되기도 한다.

 대사관 등 재외공관도 특권·면제를 받는다. 공관은 불가침 영역으로 주재국의 경찰도 공관장의 동의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빈 협약 22조).

 외교관에게 부여된 특권 때문에 비난 여론이 일기도 한다. 2011년 10월 주독일 한국 대사관의 한 외교관이 음주운전 사고를 내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당시 이 외교관은 면책특권으로 음주측정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자 독일 RTL방송은 “외교관들은 면책특권 때문에 벌금이나 벌점이 부과되지 않는다”며 면책특권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외국공관 소속 외교관 차량의 과태료 미납 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뉴욕의 경우 2002년부터 외교관을 태운 차량의 불법주차에 부과한 과태료 중 1600만 달러(약 166억원)를 받지 못하고 있다.

 특권·면제를 누리는 외교관에게도 의무는 있다. 빈 협약은 외교관들에게 두 가지를 부여했다. 접수국의 법령을 존중하고 내정에 개입하지 않을 의무다(빈 협약 41조). 조 교수는 “접수국의 국내법을 존중하는 것은 외교관의 기본적 소양”이라며 “외교 선진국일수록 접수국의 국내법을 잘 준수하고 과태료도 제대로 납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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