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드 한국 배치, 동북아 긴장 높일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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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전 외통위원장과의 대담 도중 MGIMO와 러·한 소사이어티가 공저한 『불안한 이웃』을 보여주는 아나톨리 토르쿠노프 MGIMO 총장. 남북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모스크바=박진 전 위원장]
박진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의 하나인 러시아는 근대 이후 한반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미국 등 서방과는 다른 시각을 지닌 러시아의 속내를 파악하는 것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본지는 이를 위해 러시아의 4대 싱크탱크 수장을 연쇄 인터뷰했다. 박진 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이 본지의 객원 칼럼니스트로 참여해 러시아 외교·경제 정책을 좌우하는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MGIMO)·러시아전략문제연구소(RISS)·러시아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러시아고등경제대(HSE)의 책임자를 만났다.

 “미국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를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沖繩)에 배치하려는 의도는 (동북아에서) 긴장을 고조하려는 것이지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러시아 외교정책의 산실인 MGIMO의 아나톨리 토르쿠노프(65) 총장은 지난달 말 박진 전 외통위원장과의 대담에서 “한국에 미사일방어(MD)를 배치하는 것은 북한만 겨냥한다기보다 한반도 내 미국의 세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동북아 지역 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외교관으로 미국과 북한 대사관에도 근무한 그는 러시아의 한국 전문가 모임인 러·한 소사이어티를 결성하는 등 아시아·태평양과 동북아 지역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서울 명예시민으로 러시아 특명 전권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미국은 북한 체제가 곧 붕괴할 것으로 믿고, 압력을 가하면 붕괴가 앞당겨질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근시안적 시각이다. 북한 체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를 부정하면 안 된다. 1980년대에 북한 자멸 예측이 유행했지만 그 예측은 다 빗나갔다. 지금은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며,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도모하고 남북한이 납득할 수 있는 통일로 나가야 한다.”

 -6자회담 전망은.

 “미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의 전제 조건으로 핵·미사일 실험 유예와 핵 활동 중단을 요구하는데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회담 자체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기 때문에 ‘전투부터 해보고 생각해 보자’는 나폴레옹의 말처럼 일단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반도 안정이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 문제는 동북아뿐 아니라 아시아, 나아가 세계 평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와 대화 부재가 심각한 충돌과 전쟁 요소를 안고 있는 만큼 대화를 통한 접근과 소통을 촉진하는 움직임을 러시아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남북 관계 개선 방안은.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평화 구상을 통해 변화를 향한 준비된 모습을 보여줬다. 북한도 다양한 소통 채널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닌 실천이다. 남북한의 만남은 정상회담일 수도 있고, 장관 혹은 차관급 회담일 수도 있다. 올해 예정된 자카르타 반둥회의(4월)나 모스크바 승전 70주년 행사(5월)에서 남북한 고위급 만남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북·러 간 고위층 방문과 철도 현대화, 군사 협력 등 다양한 교류가 진행 중이다.

 “러시아는 북한과 경제 협력을 증진하고 물류 교류를 확대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 에너지 자원의 한반도 공급과 북한 천연자원 개발·공급, 북한 내 제철공단 설립 등에 관한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러시아의 역할은.

 “러시아는 남북한이 우호 관계로 나갈 수 있도록 전폭 지원할 것이며 동북아 평화 유지를 위해 남북한 소통과 교류 확대를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단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 증진을 통해 양국뿐 아니라 한반도, 아시아 평화, 안보 증진 기반을 다지려 한다.”

 -남북통일은 언제 이루어질 것으로 보나.

 “독일이 분단된 시기는 40년 동안이었는데 통일 후 동·서독 간 소통과 이해 문제가 많았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통일 당시 동·서독의 국민소득 격차는 1대 3이고. 북한과 남한은 1대 15 정도다. 따라서 분단 70년을 맞은 남북이 통일을 이루려면 사전에 적응기를 거쳐야 한다. 적응기가 없다면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므로 대화를 빨리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한·러 수교 25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에 대한 평가는.

 “한국과 러시아는 전혀 교류가 없었던 상태에서 지금은 25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정치·경제·문화 교류가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하고 한국의 역대 대통령을 모두 만났는데 한결같이 한·러 관계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역할도 컸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방한에서 무비자 협정을 체결해 두 나라를 보다 밀접한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담=박진 전 외통위원장
정리=정재홍 기자

◆MGIMO=외무부 산하의 외교관 양성 기관으로 러시아의 최고 명문 대학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등 러시아 엘리트 외교관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 주요 외국 정상들이 방문해 연설하는 러시아 대외관계의 메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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