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소지 알고도 그냥 가자는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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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소지가 있는 것을 여론에 밀려 통과시켜야 하느냐의 고민은 다 갖고 있다. 사회에 미칠 혁명적 변화를 국민이 알도록 했어야 하는데 쉬쉬했다.”(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오전 기자들과 만나)

 “법리적 문제점이 있지만 대승적으로 국민의 요구를 수용해 달라.”(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오후 의원총회에서)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가 합의한 만큼 표결 결과는 226(찬성) 대 4(반대) 대 17기권)이었다.

 법안의 핵심은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100만원 초과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하고 100만원 이하라도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받은 돈의 2~5배를 과태료로 물리는 것이다.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청탁받는 공무원을 처벌하겠다”고 국무회의에 보고한 지 3년9개월 만이다. 김영란법은 시대 상황의 반영이었다. 벤츠 리스료와 샤넬 핸드백 등 5591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여검사가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죄판결을 받은 ‘벤츠 여검사’ 사건이 “부정부패를 막는 법망을 더 촘촘히 짜자”는 논의에 불을 붙였다.

 법안이 2013년 8월 국회에 제출된 뒤에도 뒷짐 지고 있던 국회는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후에야 이 법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한데 공직자에 맞춰졌던 법안의 창끝은 엉뚱한 곳을 향하기 시작했다. 법안 적용 대상이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으로 확대된 지난해 5월 23일 정무위 법안 소위의 기록이 생생한 예다.

 ▶강석훈(새누리당) 의원=“단순히 KBS·EBS뿐만 아니라 관련 언론기관은 다 포함돼야 되는 게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데요.”

 ▶강기정(새정치연합) 의원=“그럴 것 같은데요. 길게 논의하지 맙시다.”

 ▶김용태(새누리당) 법안심사소위 위원장=“길게 논의하지 말자니 무슨 소리야?”

 ▶강기정 의원=“다 넣자… 종편이고 뭐고 전부. 인터넷 신문, 종이 신문도 넣고….”

 위헌소지엔 눈감았고 법적 안정성 확보도 외면했다. 통과된 법에 따르면 같은 병원에 근무해도 교수 겸직 의사는 적용되고 교수 아닌 의사는 대상이 아니다. 국책은행 행원은 대상이지만 일반 시중은행은 대상이 아니다. 시민단체도 빠졌다.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둬 19대 국회도 법 적용을 피하게 됐다. 반대로 명절 선물과 음주·골프 접대 등이 사라져 식당과 골프장, 선물업계 등 민간 부문이 타격을 받게 됐다. 국회는 ‘국민의 뜻에 따랐다’며 밀어붙였다. 하지만 혼란과 혼선은 ‘국민의 몫’으로 남겨졌다. 비겁한 정치가 낳은 비극이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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