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전화도 안 받는 근무기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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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이 방미기간 중 청와대 비서실에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하니 기가 찬다.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의 해외 체류가 국정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긴밀한 연락체계를 갖추고 비상근무를 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그럼에도 청와대 비서실 어느 곳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니 기강 해이가 걱정스럽다 못해 개탄스럽다. 이것은 비단 야근 당직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대통령이 그런 상황을 확인하기까지 손을 놓고 있었던 간부들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나사가 풀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 정부의 공직 기강 해이 현상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한.미 정상의 로즈가든 기자회견은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이긴 하지만 미국 방송은 이미 일정을 알고 중계준비를 했다. 이를 본 우리 수행기자들이 재차 확인했는데 청와대 홍보수석은 방송중계 직전까지도 몰라 결국 미국 방송의 중계화면을 받았다고 한다.

물류대란에 대해 대통령이 물어도 장관들은 상황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고, 국가원수가 군중 속에 노출된 위험한 행사를 하는데 현장 상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뒷문으로 드나들게 하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가. 과거 정부의 경험과 국정운영 시스템을 모두 무시해 놓고 그 대안은 없는 것이 혼란을 자초한 원인으로 보인다. 특히 적과 동지라는 대통령의 이분법적 언행이 측근에 대한 온정주의로 나타나면서 빚어진 부작용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제라도 대통령 주변의 기강부터 확실히 다잡아야 한다.

물류대란에서처럼 5.18 행사에서도 공권력을 엄정하게 집행할 당국자들이 '코드 맞추기'에만 급급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적 눈치보기 때문에 나라 질서가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된다. 책임을 물을 사람에게는 철저히 책임을 물어 기강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