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 코너] 장애친구가 쏘는 가슴 속 '작은 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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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초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 발달장애를 지닌 훈이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훈이는 늘 친구 없이 혼자 점심을 먹었다. 남모르게 연필심으로 찌르는 등 괴롭히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괴롭히는 아이가 누구냐고 선생님이 물어도 훈이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훈이를 볼 때마다 나는 마음 한구석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훈이를 괴롭힌 애들을 알려줬다. 나는 교무실로 달려가 훈이에 대한 집단 괴롭힘의 실상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 날 반성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선생님 역시 눈물을 보이셨다.

다음 날부터 반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훈이의 숙제를 도와주고 식사할 때도 함께 어울렸다. 비록 1년 동안이었지만 훈이와의 우정은 고학년이 돼도 잊혀지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해 교실에 처음 들어선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훈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훈이는 키가 훌쩍 자랐고 안경을 썼는데, 선하고 큰 눈망울은 여전했다.

훈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발달장애가 여전했지만 이젠 친구를 사귈 줄도 알고 쾌활했다. 우리 반 학생들 대다수는 그런 훈이를 아끼고 사랑한다.

훈이는 수업도 열심히 듣고 발표도 열심히 한다. 이따금 발표 내용이 엉뚱해 반 전체가 웃음바다를 이루지만 비웃음은 결코 아니다. 순수하고 솔직한 성격 역시 훈이의 매력이다.

뇌성마비 장애를 다룬 동화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의 내용 가운데 '장애는 작은 십자가'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훈이에게 장애는 '작은 빛'이다.

장애인들이 편견을 떨치고 가슴에 하나씩 간직한 작은 빛을 내비추었을 때 세상은 아름답게 빛난다. 우리 비장애인들도 편견을 내모는 아름다운 빛을 발하면 더불어 사는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전유나 인천 부광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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