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조정래 ‘아리랑’… 뮤지컬 흥행 릴레이 잇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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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세 달째 공연 중인 뮤지컬 ‘원스’의 최대 관심사는 번역이었다. 원작인 영화 ‘원스’의 인기 덕에 영어 가사가 익숙해진 팬들은 ‘한국말로 원곡의 맛이 살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난 널 몰라 허나 원해…”

  하지만 남자주인공 ‘가이’가 ‘원스’의 주제곡 격인 ‘폴링 슬로우리(Falling Slowly)’의 첫 소절(원곡 ‘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을 부르자 객석에선 안도와 감탄이 교차했다. 간결한 가사에 실린 압축된 감정이 듣는 사람의 가슴 속에 오롯이 전달돼서다.

 뮤지컬 ‘원스’의 윤색을 한 고선웅(47·사진) 극단 마방진 대표는 “윤색은 조탁(彫琢) 작업이다. 6개월 동안 단어 하나하나를 갈고닦았다. 그래야 의미도, 형식도, 말맛도 살아난다”고 말했다. “‘허나’라는 단어 하나를 찾기까지 대여섯 시간 넘게 고민했다”고 했다.

 올해 그의 가장 큰 과제는 창작 뮤지컬 ‘아리랑’이다. 조정래의 동명소설 『아리랑』이 원작인 작품으로, 극본과 연출을 맡는다. 광복 70주년 기념작으로 신시컴퍼니(대표 박명성)에서 제작한다. 7∼9월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대사 한마디, 안무 한 동작도 허투루 소모하지 않고 철저히 계산에 따라 배치하는 그의 스타일이 ‘아리랑’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그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짚어보는 작품이다. 총 12권으로 이뤄진 방대한 원작의 이야기를 다 담을 수는 없다. 한 가족의 이야기로 압축시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가급적 쉽게 풀어나가겠다는 얘기다. “단순하고 편안한데 감동이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는 소신에 따라서다.

 그는 또 “작품이 높은 데서 관객을 내려다봐선 안 된다”면서 “군중 속으로 들어가 대중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모티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공연계에서 가장 바쁜 연출가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신작인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와 신파 연극 ‘홍도’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연극 ‘푸르른 날에’는 2011년부터 매년 봄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올라 전석 매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 그가 각색과 연출을 한 작품이다.

 특히 그는 윤색에 정평이 나 있다. 고교 시절 시문학반에서 시어를 다듬던 감수성으로 대사와 가사를 손질한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와 연극 ‘대학살의 신’ 등도 그가 윤색했다. “윤색은 작품의 맛을 살리는 중요한 작업이지만, 아직 창작의 한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과 마찬가지로 뮤지컬 역시 나중에 털어 먼지가 안 날 정도로 딴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가 노래의 노예가 돼 했던 말 또 반복하는 식으로 노래하면 지루해진다”면서 “‘줄리엣 사랑해. 어제도 사랑했어. 생각해보니까 잠깐만 널 사랑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식으로 속에서 터져나오는 말을 노래 속에 담아야 느슨해지질 않는다”고 강조했다. 

글=이지영,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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