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집권당은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그래서인지, 지난 주말 우리당 의원총회는 성토장이었다. 대다수의 발언자가 지도부 총사퇴를 촉구했고, 몇몇 의원은 당의 처신을 싸잡아 비난했다. "똑똑하지만 싸가지 없는 당." 어떤 의원의 서글픈 자조였다. 그런데 지난 1년10개월의 행보로 보건대 우리당은 별로 똑똑하지도 않았고, 내홍에 휩싸인 지금은 더욱 아니다.

곰곰 따져보면, 우리당 의원들에게 정당은 어렵게 다듬어 온 자신의 열망을 실현하는 창구였거나, 아니면 뜻이 맞는 동지들의 분파적 세계관을 권력화하는 기제였을 수도 있다. 그 열망에 저항하는 집단은 분쇄 대상이고, 약간 너그럽다면 계몽의 대상쯤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운동권의 인식 지도에는 이런 경계선이 선명했다. 이들이 정당정치로 이동할 때, 이념 과잉과 피아 구분의 멘털리티를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는 했었는지. '나'의 의사를 앞세우면 정당은 대변 기능을 상실하고, 이의(異意) 집단을 이단(異端)으로 인식하면 공동체의 의지가 반분(半分)된다. 개별적으로는 똑똑해도, 조직적으로는 결코 똑똑하지 않은 소치이다. 그래도 개혁을 위해서는 당파성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하면 집권당은 소수정당으로 전락하고 '대변'과 '책임성'이라는 정당정치의 두 축은 무너진다.

정당은 공동체 의사를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집권당일수록 감도는 더욱 예민하다. 여기에 '나'는 없다. 없어야 한다. 그런데 책임공방에서 번진 우리당의 내홍 속에 수많은 '내'가 읽히는 것은 우려스럽다. 어떤 의원은 다시 당파성을 주장했고, 어떤 이는 청와대의 독주를 규탄했다. 어떤 정당이라도 가장 경계할 것은 내부 균열이다. 그것이 실패의 제상에 올릴 공물을 둘러싼 균열일 때에는 봉합하기가 쉽지 않다. 내부 균열은 우선 대통령과 거리 두기로부터 출발해 집권당 내부 다툼으로 번진다. 단임 대통령제의 최대 취약점이다. 결과는 거버넌스의 약화. 그것은 집권당이 공동체와 멀어졌다는 전형적 징표다. 똑똑한 나를 제어하고 대변자로서 전환하지 않는 한, 위기 때마다 빚어지는 내부 분파들의 세력 다툼은 끝나지 않을 듯하고, 구원투수는 다시 제물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당의 존재를 일사불란하게 알렸던 지난해 정기국회, 그때의 좌절을 머리 맞대고 분석했다면 올해가 이렇게 허망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2005년의 정치에서 집권당이 없었던 이유는 아직도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을 대변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올 내내 청와대가 정책 이니셔티브를 행사할 때 우리당은 어디에 있었는가. 올 최대의 쟁점인 부동산과의 전쟁에서 우리당은 청와대안을 결재할 자세로 일관하지는 않았는지. 대연정 제안에 당의 배서(背書)는 없었고, 쌀협상 비준안 가결에 우리당은 농민을 설득할 뜻도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올해 정기국회에 임하는 집권당의 핵심적 화두는 무엇인가? 똑똑한 개별 의원들이 내놓는 수백 개의 미시정책 말고 그것을 집약한 집권당의 국가발전안은 무엇인가? 우리당에게 민심의 풍향계가 있기는 한가? 독설을 쏟아내 온 유시민 의원의 고백이 오랜만에 마음에 와 닿는다. '당은 아무런 국정운영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지난 7개월 동안 백지상태로 흘러왔다'는 것. 그래서인지, 올 한 해의 정치와 생활 현장에서 갈 길을 알려주는 믿음직한 정당, '집권당은 없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