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 “동성결혼 허용” 정면 거부한 앨라배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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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에서 동성(同性) 결혼 허용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지만 보수성향이 짙은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앨라배마주에서는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허용 결정에 대해 주 대법원이 반발하며 주 사법체계와 행정이 극심한 혼란을 빚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은 9일(현지시간) 동성 결혼을 허용하라는 연방 지방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이를 번복해달라며 앨라배마 주 법무장관이 제기한 소송을 찬성 7명, 반대 2명의 결정으로 각하했다.

하지만 로이 무어 앨라배마 주 대법원장이 곧바로 반기를 들었다. 그는 주 법원 판사들에게 동성 결혼을 금한 주 헌법 등을 들어 결혼 허가서를 발급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연방수정헌법의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 매디슨카운티 법원에서 결혼 허가를 받은 중년의 남성 커플이 서로 껴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매디슨카운티 AP=뉴시스]

 이 때문에 앨라배마주에서는 일선 판사마다 동성 결혼에 대해 제각각 다른 결정을 내리면서 극심한 혼란을 연출하고 있다. 인권단체인 남부빈민법센터(SPLC)에 따르면 앨라배마주 카운티 중 주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8개 카운티에서 동성 결혼을 허가했지만 다른 6개 이상의 카운티에서는 주 대법원장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터가 카운티의 앨 부스 판사는 “동성 결혼 신청서는 받겠지만 허가하지 않겠다” 고 말했다.

 앨라배마주는 미국 내 대표적인 보수 성향 지역이다. 주도인 몽고메리가 전쟁 당시 남부연합의 수도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앨라배마주의 동성 결혼 논란이 1960년대 인종차별 폐지에 대한 논쟁을 연상케 한다고 보도했다.

 연방대법원은 2013년 ‘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이성 간 결합’이라고 규정해 연방정부에서 동성 커플이 부부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한 96년 결혼보호법(DOMA)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동성 결혼 인정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혼란을 부채질했다.

 동성 결혼에 대한 혼란은 오는 6월이 돼야 정리될 전망이다.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16일 “수정헌법 14조에 따라 각 주에서 동성인 사람들의 결혼을 인정해야 하는지 등을 판단하겠다”며 오는 6월 말 최종 결론을 내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현재 50개 주 중 34개 주와 워싱턴DC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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