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의 근원적 방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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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를 잃고도 외양간은 고쳐야한다.
그러나 대형 금융사고를 그토록 자주 당하고도 외양간이 제구실을 못한다면 문제의 핵심이 외양간에 있지 않음을 깨달아야한다.
대형사고가 날때마다 어김없이 「근본적인」 대책이 나왔고 수많은 보완조치도 뒤따랐지만 그 어느 조치도사고의 근원을 막지못하고 미봉책에그쳐온 점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대형금융부정의 사회적, 경제적 피해가 얼마나 크고 그피해가 결국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익히 알고 있는국민들은 이제 외양간에 못질하는 그런 안이한 사후대책에 신뢰를 보내지 못할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문제의 핵심은 아무리 튼튼하게 이리저리 외양간을 손질해도 그것을 쉽게 뛰어넘을수있는 길이 있고 그럴사람들이 있어왔다는 사실이다.이는곧 대형 금융사고가 단순한 은행사고가 아니라 사회병리의 한 표면이며사회적 역관계의 단층을 드러내는 본보기임을 의미한다.
많은 분석가들은 제도의 미비를 지적하고 금융관 의 문제를 제기한다. 은행원의 직업윤리를 개탄하고 감독기능의 미흡을 지적한다. 심지어는 금융의 자율화가 이런 사고의 빈발을부채질한다고 보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이 모든 지적과 분석은 대형금융사고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빼놓을수없는 요소들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금융의 관행이 개선되고 은행원들의 직업의식이 확고해지고 감독이 더욱 철저해진다면 이런 대형사고가,이런 변칙과 탈법이 없어질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한가지 분명한것은 관치금융의 테두리안에서 어떤 관행과 제도가 개선되더라도 오늘의 자율경영이나 직업윤리가 정착되기 어려울것이라는 사실이다. 20여년동안 이루어온 금융산업의 발전과 제도 개선이그처럼 괄목할만한데도 오히려 사고가 빈발해온 사실은 곧 본질적으로금융은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금융과 사회의 역관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함을 의미한다. 금융이 금융인의 판단과 책임에 의존하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사회·경제적 여건을 먼저 없애나가지 않는한 금융의 발전은 한마디로 비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치금융의 적폐를 하루빨리 일소해야한다.말로는 금융자율화를 내걸고 있으되 민영화는 겨우 형식에 그칠뿐 실질의 자율은 아직도 요원하다.그것을재촉하기위한 시장여건의 정비도 아직은 미비하다. 가장 중요한 금리기능도 외세적관리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이런 금융환경아래서 금융이 금력과 외세로부터 독자적이기를 바란다면 무리다.
금융이 이같은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되어 독자적인 판단과 책임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한 과제다.이를위해서는 하루빨리 관치금융의 한계를 떨어버리고 명실상부한 금융자율화가 이루어져야한다.
이번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마련한일련의 대책들은 주로 금융인 비위에 대한 가중처벌을 골자로 하고있으나 그것보다는 이같은 금융외적 간섭과 영향력으로부터 은행과 금융을 보호하는 장치의 강화와 실천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은행을 속죄양으로 만들기는 쉬우나 그것만으로는 결코 대형 금융사고의 근원적 발본이 불가능함을 강조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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