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때와 만날 때|이산30여년…애절한 사록들 (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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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산가족찾기 캠페인 18일째인 지난17일 처음으로 전쟁의 와중에서 헤어졌던 부부가 33년만에 만났다. 30여년이 흐르는동안 60대 백발의 노인으로 변한 이들 이산부부는 각기 새로운 가정을 꾸민 남남으로 만나 전쟁이 안겨준 아픔을 되씹으며 재회의 기쁨과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17일하오5시쯤 KBS중앙홀에서 만난 박봉주씨 (64·충북청주시사직2동639)와 김세란부인(61·서울행당2동317).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노.』
『죽지 않았으니 이렇게라도 만났지요.』
만나는 순간 두사람은 다소 어색한 듯했으나 곧 박씨가 김부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볍게 껴앉자 김씨는 울음을 삼켰고 박씨는 꿈같은 해후에 말을 잊었다.
둘다 고향이 평양인 이들은 6·25가 터지기 직전인 50년초 결혼한 신혼부부였다.
전쟁이 나고 1·4후퇴때 다른 사람들처럼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두사람은 서울효창동 금양국교에 설치된 피난민수용소에서 지내다가 헤어지게 됐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 몸이 부석부석한 아내와 생후 석달된 장녀 명숙양을 수용소에 두고 박씨가 군에 징집된 것이다.
박씨가 군복무를 마치고 금앙국교에 돌아왔을때는 이미 아내도 딸도 어디론지 옮겨간 다음이었다.
박씨는 1년남짓 전국곳곳의 수용소를 돌아다니며 아내와 딸을 찾았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다.
6·25가 나고 4년뒤인 54년, 박씨는 재혼해 원래 익혔던 목공기술을 발판으로 충북 청주에 정착했다.
그는 재혼한 부인 (56)과 사이에 낳은 28세부터 22세까시의 2남2녀를 두고 살림걱정이 없을만큼 자리를 잡았다.
한편 남편과 생이별을 한 김씨의 인고 (인고)의 세월은 너무나 애처로왔다.
김씨는 서울에서 전북이리 피난민수용소로 옮겨졌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고명딸 명숙양을 결혼시킬때까지 남편을 기다리며 27년간 수절했던것이다.
어머니의 고생을 지켜보며 커온 딸 명숙씨는 더이상 기다림에 지치지말고 재혼하라고 권했다.
딸의 간절한 권유로 김씨는 78년 지금의 남편(74) 과 재혼했다.
박씨는 이산가족찾기 방송이 시작되자 보름동안 남에게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고민해오다 15일밤 지금의 부인과 자녀들을 모이게 하고 사정을 털어놓았다.
아내와 자식들은 뜻밖에도 아버지의 결심에 군말없이 따라주었고 용기를 얻은 박씨는 옛부인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16일하오 박씨는 청주방송국을 통해 접수번호177번으로 『아내 김씨와 딸, 두조카를 찾는다』는 방송을 했다.
김씨역시 『행여나』 하여 그동안 TV를 지켜보다 옛남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곧 딸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한 끝에 방송국에 연락, 극적인 상봉을 한것이다.
박씨와함께 청주서 올라온 장남 태규씨 (24)는 『어머니 한분을 더 찾은것같다. 아버지뜻에 따라 친어머니처렴 모시겠다』 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들 부부의 유일한 핏줄인 명숙씨는 『생후3개월만에 헤어진 아버지여서 아버지의 정을 느낄수는 없지만,친아버지를 찾았으니 더이상 바랄게없다』 며 감격해 했다. <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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