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있어서 안될 이산33년의 아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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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6월30일 밤 10시15분(?)이었다. 당초에 그렇게 대대적인 대캠페인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채 두사람의 남녀사회자에 의해 시작된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사각의 종이 피깃을 들고 초조하게 촌분을 다투듯한 마음졸임으로 앉아있는 당사자들의 얼굴을 카메라 앵글이 서서히 지나갈동안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여유만만한 사회자들이 사이사이에 끼어넣은 여러가지 기획프로들이 영 담담하게 느껴지던 시간이 지났다.
이제 사회자들은 많은 시청자들과 가족찾기 당사자들에게 충격적인 만남을 보여주기 위해서 방송국으로서는 두 자매가 틀림없다고 생각되는「언니」와「동생」을 양쪽에서 걸어나오게 했다.그러나 그 둘은 아니었다.
동생으로 오인된 여자분을 향해 언니로 오인된 분이 완강하게 등을 획돌려버렸을 때 그녀는 울먹울먹 하면서『이 기회에 제 가족도 좀 찾아주세요』라고 면구스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때 시청자가 느끼는 묘한 아픔과 분노는 동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개진됨에 따라 유사이래「KBS방송」은 가장 충격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역사드라머」를 산출해냈다. 적십자사가 10년동안 3백여 이산가족을 찾아줬지만 KBS는 만 3일만에 8백여 이산가족에게 30여년만의 극적 상봉을 제공해주었다. 대단한 통곡이요 대단한 눈물이며 대단한 절규의 바다였다.
4천만 민족이 하나같이 비상한 관심 속에서 함께 울고 아파하는 이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지금까지 누누히 글과 말로 강조되어도「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며, 얼마나 처절하며, 얼마나 비인간적인가를 절절히 새기지 않을 수 없는 밤이었다. 그리고 국토분단의 아픔이 무엇이며 육친의 정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목격하였다.
그 어떤 반공교육시스템보다 현장감 만점의 반공드라머였으며 그 어느 PR방송보다도 공영방송의 진가를 가장 잘 입증해준 프로그램이었다.
솔직이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민족처럼 정적이고 육친을 그리워하고 순박한 민족이 또 있을까를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민족처럼 기쁨과 술픔이 동일한 민족이 또 있을까를 생각했다. 하나같이 가장 절정의 상봉의 순간에 통곡을 터뜨리지 않고는 표현할 길없는 기쁨,그것은「6.25」라는 전쟁의 응어리였다. 나도 덩달아 따라 울다가 이성을 되찾았을때 퍼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그것은 6.25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찌하여 저런 한이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었나 하는 점이며, 어찌 그리도 우리 민족은 참아만 왔나였다. 10여년 동안 적십자사가 겨우 3백여 가족이라니 이제 이 운동은 이미 범국민적 관심과 연중 사업으로 굳어져갈 승산이 큰 것 같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차제에 꼭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는것 같다.
그것은「전쟁」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라 「이산」이 곧 뼈저린 「아픔」임을 깨달아야 될줄로 안다. 이산의 아픔이 어떤 것이며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은 한 아이의 일생이 어떤 것인가를 독똑히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 극적인 드라머를 통해서 지금 여기에 전쟁중이 아닌데도 버려지고 방치된 기아들에게도 새로운 관심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6.25를 통한 이산의 뼈저린 체험이「내가족 내친척」의 차원을 넘어 다른이의 아픔과 상처를 싸매주고 치료해주는 형제애의 힘으로 확산될수만 있다면 한반도는 다시 태어날 수있을 것이며 해외로 입양보내지는 아기들도 줄어들지 않을까? 우리는 6.25의 상흔을 통해서 이 역사가 새로 태어나는 유산이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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