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씨 영장서 드러난 DJ 정부 도청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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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국서 불법 감청 관련 업무 주도"=영장에 따르면 국정원은 디지털 휴대전화가 상용화된 96년 감청장비 개발에 착수해 과학보안국(8국) 운영단 개발팀에서 98년 5월 R-2 시제품을 만들었다. 8국은 김대중 정부 초기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개편될 때 생겨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8국의 불법 도.감청 의혹을 제기하는 등 정치쟁점화하자 2002년 10월 해체됐다.

성능 보완을 거쳐 99년 9월 R-2 5세트를 추가 제작한 국정원은 이를 이동통신사 상호접속 교환기와 전화국(KT) 관문교환기가 연결된 6개 전화국에 설치했다. 국정원 과학보안국 기술연구단도 99년 12월 휴대전화 고유번호와 주파수를 해독한 뒤 반경 200m 이내의 휴대전화 통화를 엿들을 수 있는 차량탑재형 감청장비인 CAS를 20세트 개발했다.

R-2와 CAS를 이용해 불법 감청을 직접 하고 자료를 가공하는 업무는 8국 운영단이 맡았다. 운영단 내 국내 수집팀과 R-2 수집팀이 감청장비를 통해 통화내용을 수집한 뒤 이를 종합처리과(일명 종합분석과)에 넘겼다.

종합처리과가 매일 이를 가공해 만든'통신첩보 보고서'가 종합처리과장→운영단장→8국장→국내담당 차장 등 윗선으로 보고됐다. 김씨 영장에는 이 보고서가 김 전 차장→국정원장→청와대.정권 실세로, 또는 김 전 차장으로부터 직접 정권 실세로 보고됐는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검찰은 향후 김씨 및 전직 국정원장 등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이를 규명할 방침이다.

◆ "본연의 업무도 결과적으로 불법"=검찰 수사의 물꼬가 터진 것은 8월 19일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CAS 사용신청 목록 압수였다. 이 목록에는 마약.산업보안 수사를 담당하는 국정원 6국이 범죄 용의자 휴대전화를 감청하기 위해 2001년 3월 CAS를 대여받아 한 달간 사용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당시 6국의 감청은 범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이 "휴대전화 감청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해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합법적인 감청영장 신청이 불가능해 영장 없이 감청을 했다. 결과적으로 6국의 감청은 불법 감청이 됐고, 검찰은 김씨 영장에서 "김 전 차장은 6국과 공모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고 기록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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