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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앉아 공부한다고 모두 '진상 손님'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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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 현
JTBC 국제부 기자

‘카페 자리 진상 최고봉’. 이번 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카페의 4인용 테이블마다 노트북이 하나씩 놓인 사진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고작 한 명이 4인용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 사무실처럼 쓰더라”는 볼멘소리가 달렸다. 도대체 왜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공감 댓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반면 자기 돈으로 커피 값 내면서 눈치껏 공부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항의성 글도 많았다.

 예전에 나도 ‘카페 죽순이’였다. 대학교 시험 기간엔 아침잠이 많아 도서관 열람실 자리는 꿈도 못 꾸고 카페에서 공부를 했다. 언론사 입사시험 준비도 카페에서 했다. 다른 기자 지망생들과 스터디를 하고 글을 썼다. 출근하듯 카페에 가다 보니 홍대와 신촌 일대 골목골목 모르는 카페가 없을 정도였다. 기자가 된 지금도 외근을 나가면 늘 콘센트가 있는 자리에 노트북을 펴고 앉아 전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

  내가 카페에서 공부한다고 하면 엄마는 집에 책상 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눈총을 줬다. 아빠도 커피메이커로 원두커피 내려놨는데, 왜 바깥에 돈을 버리느냐고 거들었다. 대학생 딸을 둔 회사 선배도 학교 도서관 놔두고 공부한답시고 카페에 가서 용돈 펑펑 써대는 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카페를 ‘1페니짜리 대학’이라고 불렀다. 입장료 1페니의 카페에서 최신 정보와 지적 토론이 오갔다. 학교보다 카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학생도 흔했다. 수많은 시와 소설이 유럽의 카페에서 쓰여졌고 유럽의 계몽주의도 카페에서 탄생했다. 당시 유럽에도 카페 ‘죽순이’ ‘죽돌이’ 젊은이와 부모세대의 갈등이 종종 있었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는 딸이 커피에 중독될까 봐 카페에 가지 말라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담은 성악곡이다. 딸을 연기하는 소프라노가 “커피 커피 커피”라고 노래하면 아버지를 연기하는 베이스는 “커피를 당장 치워 버려”라며 맞선다. 건강에 대한 걱정과 만만치 않은 커피 값이 이런 갈등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결론 삼아 카페 덕분에 취직해 그럭저럭 사는 입장에서 카페 공부족을 거들어 볼까 한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독서실보다 카페에서 집중이 잘된다. 너무 시끄럽지 않은 카페 소음이 창의성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중얼중얼 말을 하며 익히는 외국어 공부나 타자를 치며 과제나 글을 써야 하는 경우 독서실이나 열람실에선 민폐가 된다. 그리고 10%쯤은 허세도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니 카페에서 넓은 자리 차지하고 앉아 공부하는 이 때문에 피해를 봤다면 예의를 갖춰 자리를 옮겨 달라고 말해 주시라. 그런 게 아니라면 ‘제멋이려니’ 하고 이해해 주시길.

이현 JTBC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