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하늘을 보는지 땅을 보는지, 비스듬히 내려온 처마. 그 처마를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어올린 추녀. 처마 끝의 풍경소리 솟을대문 밖에는 『이리 오너라』부르는 점잖은 어르신네의 목소리.
전통적인 우리의 한옥은 잃어버린 유장한 삶을 회상시킨다.
서울시가 안국동, 가회동, 계동일대의 10만평을 한옥 보존지구로 지정했다. 국립공원인 경주와 한옥 밀집지역인 전주의 교동·풍남동에 이어 세 번 째. 이제 개발의 압력에 밀려 한 채 두 채 사라지던 한옥이 명맥이나마 유지하는가 보다.
한옥의 건축이 본격화된 것은 l894년(고종 31년) 갑오개혁 이후였다. 갑오개혁은 양반과 상민, 문반과 무반의 구별은 물론 역정, 광대, 백정 등의 차별을 철폐했다. 일체의 신분제도가 부인된 것이다.
당연히 중인과 서민의 주거양식도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특히 양반집의 솟을대문을 동경하던 중인들은 너도나도 대문을 높이기 시작했다.
지금 남아있는 쓸만한 한옥들은 대부분이 1900년을 전 후해서 지은 것. 지방 민속자료 27호로 지정된 안국동 공덕귀가(전 대통령 윤연선씨 자)도 1890년께 지은 것이니 1백년 가까이됐다.
궁궐, 성곽, 사찰은 수백 년짜리가 수두룩하나 생활의 숨결이 담긴 주거로서의 고가는 1백년 남짓이 고작이다. 그것조차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니 우리 고유의 건축양식을 보존하기도 어렵다.
지방민속자료로 지정된 장교동 박준혁 가는 수한 말 참정대신 한규설의 택. 대지 1백42평에 건평 61평. 한때 이 집은 행랑채에 3층 빌딩이 들어서는 등 수난을 당했다.
집주인은 원형대로 보존하려 애썼지만 경비가 많이 들어 힘들다는 것.
한옥 보존은 보존지구의 지정으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고가의 유지와 보수에 따르는 비용을 당국이 보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때는 호화주택으로 무거운 세금을 매기기도 했다니 보존의지와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한옥은 우리 풍토에 맞는 건축양식으로 선조들이 개발한 것. 그 건축기술도 유지, 발전시킴이 필요하다. 한옥전문의 목수와 미장이등이 사라지는 현상도 우려할 만 하다. 건축가들의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옥생활을 불변하다고만 여기지 않게 외부는 한옥이되, 내부는 오늘의 생활양식에 맞는 새로운 건축양식도 개발해 볼 만 하다.
한때 일본사람들도 변리만 쫓아 양옥을 찾다가 이제 점차 전통적인 일본 주거를 편리하게 개조하는 건축기술을 발전시키고있다.
명절 때면 한복을 즐겨 입듯 한옥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으면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