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핑계거리 찾기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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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WMD) 수색팀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곧 철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영국 등에서 당혹감과 함께 반성과 비판론이 확산되고 있다.

워싱턴과 런던 정가에서는 앞으로 본격적으로 제기될 전쟁 명분을 둘러싼 비판을 염두에 둔 말바꾸기와 '희생양' 찾기가 벌써 한창이다.

◆잘못된 정보=일차적 책임은 9.11 테러 직후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설립한 대테러 정보기관인 특별대책팀(OSP.Office of Special Plans)에 모아지고 있다. OSP는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 수집을 주임무로 해 왔다.

영국의 가디언과 옵서버는 11일 "국방부의 주전론자들은 미 중앙정보국(CIA)은 물론 국방정보국(DIA)까지 불신해 OSP의 정보에 크게 의존했고, OSP 정보는 정보기관 간 공유는 물론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럼즈펠드 장관을 통해 백악관으로 직보돼 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들은 "특히 OSP는 후세인의 조카인 후세인 카밀(1995년 망명) 등 정치적 성향이 강한 이라크 반체제 출신 인사들이 제공하는 입맛에 맞는 정보들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CIA의 대테러 조직 책임자를 역임한 빈스 카니스트라로는 "OSP는 스스로 정치세력화하면서 CIA 등 미국 내 정보기관의 체계를 무력화했고, 전쟁의 명분에 적합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선택함으로써 오류투성이의 정보를 양산했다"고 비판했다.

◆잇따르는 말바꾸기=이라크내 대량살상무기 증거를 찾는 임무를 맡은 제75 특수수색팀은 투입 초기 "찾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지금은 "통역이 없어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신문을 제대로 못했고, 차량 지원이 제대로 안되는 바람에 출동 시기를 놓쳐 의혹 시설에 도착해 보면 이미 주민들이 약탈한 뒤였다"는 식의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백악관 관계자는 수색팀의 조기 철수 계획을 전한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 직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후세인을 못 잡았다고 후세인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증거를 못 찾았다고 대량살상무기가 애초부터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박했다.

미 매사추세츠 공대(MIT) 안보연구소의 마이클 시라지 선임연구원도 이날 워싱턴 포스트 기고를 통해 "중요한 것은 핵 개발 능력과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라며 "이라크를 내버려뒀다면 결국 핵무기를 갖지 않았겠느냐"며 보수파들의 새로운 논리를 대변했다.

◆엇갈리는 비판과 지지=미국 내 진보적 잡지와 인터넷 사이트들에는 '제2의 통킹만 사건''대량환상무기(Weapons of mass delusion)'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주류 언론들과 정치인들은 "좀더 지켜보자"며 신중한 입장이다.

그러나 영국의 BBC방송은 "미국은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영국으로서는 대량살상무기 증거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런던.워싱턴=오병상.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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