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상임국 일본 진출 무산될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사실상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중국이 11일(현지시간) 일본이 추진하는 안보리 개편안 표결 방침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사를 다시 밝혔기 때문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증설을 반대하는 한국.이탈리아 등 9개국(일명 커피클럽)은 이날 뉴욕 맨해튼 루스벨트호텔에서 '합의를 위한 단결(Uniting for Consensus)' 모임을 열었다. 일본.독일.인도.브라질 등 4개국(G4)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회의에는 모두 116개 유엔 회원국과 아랍연맹 등 3개의 지역국가연합이 참가했다.

◆ 미국.중국 단호한 입장 천명=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 미국 측은 하워드 스토퍼 유엔대표부 공사가 참석했다. 그는 "시한을 정해 안보리 개편안을 처리하는 데 반대하며, 모든 회원국이 합의에 도달하기 전에 표결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국 대표인 천영우 외교부 외교정책실장이 전했다. 일본은 국가명은 명시하지 않은 채 상임이사국 6개국을 증설하는 안을 6월 유엔총회에서 표결로라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천 실장은 "중국의 왕광야 유엔 대사도 미국과 같은 요지의 연설을 했다"며 "러시아는 이날 발언을 하지는 않았으나 비공식적으로 G4의 무리한 결의안 추진에 반대의사를 표했다"고 말했다.

유엔 한국대표부 관계자는 "유엔에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힘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일본의 안보리 개편안 처리 방침에 반대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에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두 나라는 지난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천 실장은 "오늘 미국과 중국의 발언은 G4에 의미 있는 메시지로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를 주도한 9개국은 향후 대책을 계속 논의하기 위해 실무그룹 위원회를 만들어 가동키로 했다.

◆ 논란의 핵심은 상임이사국 증설 여부=G4는 아프리카의 두 나라(나라는 미정)를 포함해 모두 6개의 상임이사국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안보리 개편 A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반면 이들이 영구 임기의 상임이사국이 되면 국제무대에서 정치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커피클럽 국가들은 결사 반대하고 있다. 커피클럽은 커피를 한 잔씩 하면서 의기투합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핵심 6개국은 한국.이탈리아.파키스탄.멕시코.아르헨티나.스페인 등이다.

이들은 유엔 개혁의 핵심인 안보리 개편은 민주성.대표성.책임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임이사국 확대는 이런 원칙에서 어긋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6개국이 영구 이사국이 될 경우 자신들의 기회는 박탈당하게 된다. 커피클럽은 4년 임기의 선출직 이사국을 8개 늘리는 B안을 토대로 대화를 하면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G4에선 일본이 가장 적극적=G4가 추진하고 있는 A안은 이날 회의에서 보듯 합의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일본은 합의가 안 될 경우 표결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은 지난 10여년간 안보리 진출을 꾀했으나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일본은 독일과 힘을 합쳐 경제원조를 앞세워 아프리카와 중남미를 집중 공략하면 회원국 3분의 2의 지지를 얻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 양측 참가국 숫자 싸움도=일본 등 G4가 지난달 31일 마련한 회의에는 131개국이 참석했다. 참가국 숫자로만 보면 G4가 좀 더 유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커피클럽 의장인 잔프랑코 피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이날 참가국들은 대체로 안보리 개혁에서 합의가 중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반면 G4 회의 참가국들은 일본이 어떤 입장을 밝힐지 궁금해 참석한 경우가 많았다고 유엔대표부 관계자는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선 회원국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4개국만 확보하면 되기 때문에 이날 참가국 숫자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회의장에 몰려든 취재진 80여 명 중 절반이 일본기자였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