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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만 남은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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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정재숙
정재숙 기자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정재숙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서양의 모든 음악 가운데 가장 장엄하면서도 격정적인 곡 중 하나로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4악장을 꼽을 수 있다. 마지막 대목에 울려퍼지는 대규모 합창단의 웅장한 노래는 이 교향곡에 ‘합창’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뜸한 듯했던 연말의 합창 교향곡 연주 관행이 다시 자리 잡았는지 올해 세밑에도 여기저기 베토벤의 합창이 예약되어 있다. 흉금을 두드리는 듯 객석으로 날아오는 가사 “오 벗들이여, 더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릅시다”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불끈 일어나 광장으로 걸어 나가고 싶어진다.

 12월 ‘합창’ 연주는 본디 일본에서 건너온 풍속이다. 경제개발 시대에 다른 많은 것들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려 클래시컬 뮤직의 본바닥인 유럽 쪽에는 이런 연말 풍경은 없는 듯하다. 대신 빈 교향악단의 유명한 신년음악회가 있다. 경쾌한 선율에 발레도 간혹 곁들이는 맑고 밝은 분위기의 음악회다.

 9번 교향곡의 합창 부분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인 것이다. 실러가 과연 기쁨 속에서 이 시를 지었을까. 예술작품에서 환희를 구가한다는 것은 실은 눈앞의 참담한 현실에 대한 반증일 가능성이 많다. 베토벤 자신도 이 곡을 완성할 무렵에는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 장엄한 환희의 노래를 새해 벽두가 아닌 낡은 해의 끝자락에 연주하는 까닭도 비슷한 문맥일 것이다. 낡은 것이 극치에 다다랐을 때 그 과거를 떠나보냄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것을 맞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어제 떠올랐던 태양과 오늘 떠오를 태양이 다를 것 하나 없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바뀐 숫자와 더불어 늘 어떤 새로운 세상이 우리 앞에 열리기를 꿈꾼다. 낡은 달력을 버리고 새 달력을 거는 일이 대단한 일은 아니더라도, 아무렴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는 착각이라도 좀 키워야 살아갈 맛이 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21세기의 이 현재가 너무나 눅지근하게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세기 초라기보다는 오히려 세기말의 분위기가 팽배한 듯하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는 새로이 생겨나는 것들도 많고 사라지거나 엷어지는 것들 또한 많다. 어떤 발명품들은 선보이자마자 퇴출되기도 한다. 단어들도 나름의 운명이 있다. 이를테면 ‘전수조사 ’라는 말은 구제역 파동 이전엔 들어본 기억이 없다. ‘공권력(公權力)’이라는 단어 또한 1990년대 이전에는 거의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말이 거의 필요 없었던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공권력 아닌 ‘공신력(公信力)’이라는 단어도 있었다. 예전엔 꽤 자주 사용되던 단어였는데 이젠 듣기가 무척 힘들어진 듯하다. ‘농자천하지대본 ’이나 ‘교육백년지대계 ’도 비슷한 운명이라고나 할까. 꽤 흥미로운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 ‘공신력’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이런 예문이 나온다. “대한민국 전매청은…아직은 공신력을 유지하려는 안간힘을 보여 주고 있었다.” 최인훈 작가의 40여 년 전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나오는 문장이다. 감개무량한 점이 없지 않다. 비록 소설 속 문장이긴 하나,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그 옛날의 전매청이 ‘안간힘’을 썼다 하지 않은가.

 40년 후 현실 세계의 상황은 이렇다. 전매청이 아니라 검찰청이 문제인데, 얼마 전 검찰의 청와대 문건 관련 수사를 신뢰하느냐는 JTBC의 설문에 대해 긍정적인 응답이 30%에 채 미치지 못했다. 60% 이상이 검찰의 수사를 믿지 못한다고 했다.

 믿지 못하는 국민들을 꾸짖을 것인가. 청와대 문건 관련 사태의 실체가 물론 중요하고 검찰의 신뢰 추락 또한 매우 심각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근심스럽고 두려운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국민의 신뢰가 그토록 철저하게 무너졌는데도 그 사실에 대해 무감각하다면 이야말로 어찌할 노릇인가.

 공신력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권력만 남았다. 더 이상 시민들이 신뢰하지 않는 검찰, 이것은 곧 민주공화정의 중대한 위기를 가리킨다. 헌정(憲政)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실은 바깥이 아닌 권력의 내부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 아닌가. 모든 난만(爛漫)한 것은 저물게 마련이다. 40년 전 전매청의 신뢰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검찰은 2014년 세밑 그 어떤 황혼의 풍경을 구성한다.

정재숙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