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대입 논술고사 가이드라인] 영어 지문 금지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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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30일 이기태 경희대 입학처장은 신음소리를 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이날 논술고사에 영어 지문을 출제할 수 없다는 가이드 라인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였다. 그러곤 바로 "중학 교과서 수준의 것도 안 된다고 했느냐"고 물었다. "국제화한다면서…. 국문 시험도 따지고 보면 같은 것 아니냐. 참 당혹스럽다"고도 했다. 영어 지문 얘기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논술고사를 바로잡자는 차원에서 가이드 라인이 나왔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봤었다.

교육부의 영어 지문 불허 방침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교육부는 영어 지문이 결국 외국어 실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대학가는 "일단 수용하겠다"면서도 "세계화 시대를 역행하는 지나친 규제"라며 불만이다. 벌써 점진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영어 지문은 본고사에 해당"=교육부는 영어 지문 불허 방침에 대해 "의견 수렴 과정에서 격론이 있었으나, 영어 제시문을 해석할 수 없으면 논술 자체가 불가능할 경우 이는 실제로 외국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란 다수의 의견을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본고사에 해당된다는 얘기다. 수험생의 영어 실력은 영어 지문 대신 수능 또는 학생부의 외국어 성적을 비중 있게 반영하는 것으로 될 일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이런 조치가 외국어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대학가는 냉담했다. 강태중 중앙대 입학처장은 "학문의 상당 정도가 수입되고 있고, 대부분의 자료가 영어인 실정"이라며 "영어는 학문하는 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간 시험에서 그림이나 표 자료가 제시됐듯 영어 지문도 그런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며 "한국말로만 하란 건 지나치게 경직된 자세"라고 비판했다. 최은봉 이화여대 입학부처장도 "교육자로서나 수험생을 둔 입장에서 영어 지문 문제를 좁고 편협하게 해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인묵 고려대 입학처장은 아예 "이제 대학 당국이나 교육부가 나서기보다 일반 국민에게 '국제화시대에 영어 지문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물어서 교육부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그간 협의 과정에서 거의 모든 대학이 영어 지문이 필요하다고 교육부를 설득했으나 결국 실패한 셈"이라며 "교육부가 요지부동이었던 건 결국 현 정부의 교육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 아니냐"고 했다. 논술 출제 위원을 지냈던 김경수 서강대 국문과 교수는 "그간 영어 지문을 통해 학생의 실력을 평가하는 게 가능했다"며 "영어 지문 없이 한글 논술만으로 학생들의 숨은 실력을 검증하는 문제를 내기 쉽지 않아 대학들이 출제에 골머리를 앓을 것"이라고 전했다.

◆ "지문 난이도를 조정했어야"=학교 현장도 시름이 깊다. 단대부고 이유선 진학지도부장(영어교사)은 "수능 영어가 변별력이 없는 상황에서 대학이 영어 논술을 도입해 영어 교육이 질적으로 향상됐다고 생각한다"며 "영어 지문을 제한하는 이유가 잘 이해 안 된다"고 말했다. 유웨이중앙교육 강신창 논술팀장은 "교육부의 결정은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부인할 소지가 많다"며 "세계화 추세를 감안해 영어 지문 자체를 불허하기보다는 지문의 난이도를 조정하는 방법을 택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아쉬워했다.

고정애.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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