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산책] 전남 2군 선두 지휘 황선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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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울산 서부구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2군리그 울산 현대전에 앞서 황선홍 코치가 선수들에게 작전지시를 내리고 있다. 아래 사진은 후반전 직전 어깨동무를 하고 선수들을 격려하는 장면. 울산=송봉근 기자

'스타'는 역시 만나기 힘들었고, '산책'까지 하려니 시간이 부족했다. 지도자로 변신한 '황새' 황선홍(전남 드래곤즈 코치)을 만나기 위해 기자는 24일 전남의 광양 홈 개막전에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폭우로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경기가 취소됐다. 발길을 부산 아이파크-수원 삼성전이 열리는 부산으로 돌렸고, 다음 날 황 코치 팀의 경기가 있는 울산으로 다시 이동했다. 오후 4시 울산 서부구장에서 프로축구 2군리그 울산과 전남의 경기가 열렸다. 그런데 선수들을 태운 버스가 울산 시내에서 고장나는 바람에 30분 늦게 도착했다. 결국 경기 끝난 뒤 선수들이 샤워할 동안 짬을 내 인터뷰를 했다.

부드러운 이미지의 황 코치는 경기가 시작되자 눈빛이 바뀌며 냉정한 승부사로 돌변했다. 그는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으면서 경기 내내 선 채로 선수들을 독려했다. 1-0으로 리드한 채 전반을 끝낸 뒤 황 코치는 "후반에 쟤들이 강하게 나올 거야. 그렇지만 15~20분만 버티면 주저앉게 돼 있어. 냉정하게, 상대 약 올려가면서 하란 말이야"라고 지시했다. 전남이 2골을 더 넣고 울산이 한 골을 만회해 3-1로 경기가 끝났다.

코치 맡고도 '기러기' 신세

순한 눈빛과 환한 웃음을 되찾은 황 코치에게 물었다. "어때요?" "힘들어요." "뭐가 제일 힘들어요?" "선수들이 내 맘같이 안 뛰어줄 때요. "

선수로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 본 그지만 지도자로서는 초보다. 경기를 지휘한 경험이 없으니 순간순간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이 닥칠 땐 진땀이 난다. 평소에 훈련하고 경기 전에 되풀이 강조해도 엉뚱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를 보면 속이 터진다. '내가 선수 때도 저랬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옛 선생님들이 떠오른다고 한다. 반면 연습한 대로 플레이가 연결돼 골이 나오면 현역에서 골을 넣었을 때와 또 다른 짜릿함을 맛본다.

어쨌든 '지도자 황선홍'은 순항하고 있다. 올해 처음 2군 경기의 지휘봉을 잡아 9승1무4패로 남부리그(전남.울산.포항.전북) 선두를 달리고 있다.

황 코치는 지금 '기러기 아빠' 신세다. 가족은 경기도 분당 집에 있고 그는 광양의 선수단 숙소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외로울 틈이 없어요"라고 한다. 2군은 경기 일정(1년에 36경기)이 빠듯해 훈련하랴, 경기 준비하랴 숨돌릴 틈이 없다고 한다. 선수 시절 오랫동안 집을 비웠는데 또다시 떨어져 있게 돼 아내와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딸 현진이는 아빠를 닮아 체격이 늘씬하다. 미스코리아 대회에도 나가고, 모델 같은 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1학년인 아들 재훈이는 제법 공을 잘 찬다. 운동을 시키고 싶지만 아내 반대가 만만찮다. 남편이 숱하게 다치고 몸고생.마음고생 하는 걸 지켜본 아내가 '아들만은 축구선수가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살쪘다는 소리 듣고 충격

황 코치는 21일 열린 프로축구 홈커밍매치(올드스타전)에서 MVP를 차지했다. 후반 7분에는 멋진 오버헤드슛을 보여줬고, 페널티킥도 얻어내 골을 넣었다. "사람들이 대표선수로 복귀해도 되겠다고 그러던데요" 했더니 아니라며 손을 내젓는다. "살쪘다는 소리 듣고 충격 받았어요. 이제 좀 빼야겠어요." 선수 시절 80㎏을 넘지 않던 몸무게가 지금은 87㎏이다. 많이 먹는 편도 아닌데 운동량이 줄어 살이 찐 것 같다고 한다.

대표팀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본프레레 감독 경질 뒤 구단을 통해 '이번 사태는 선수들도 그만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후배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었다. "2002년 월드컵과 비교해 선수들 기량이 나아진 게 하나도 없어요. 당시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모두가 하나 됐는데 지금은 협회.선수.감독이 따로 놀아요. 이대로라면 팬들은 월드컵 본선에서 실망할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헤어지면서 덕담을 건넸다. "국가대표 감독 황선홍을 몇 년 뒤면 볼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허허허."

따뜻한 웃음을 남기고 그는 광양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울산=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 황선홍은 …

▶ 출생=1968년 7월 14일, 충남 예산

▶ 체격=1m83cm.87kg

▶ 가족=부인 정지원(34)씨와 1남1녀

▶ 학교=서울 송곡초-용문중.고-건국대

▶ 주요 경력=1988~2002년 국가대표(A매치 103경기, 50골). 99년 J리그 득점왕(24골.세레소 오사카). 2003년 현역 은퇴, 전남 드래곤즈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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