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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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유리·안드로포프」. 「브레즈네프」 이후 소련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인물이다.
「브레즈네프」가 죽고 사흘만에 벌써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되었다. 1910년 소련 공산정권 수립 후 5번째 당 지도자다. 그의 선임자는 「레닌」,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이제 소련은 「안드로포프」 시대로 들어간다.
그가 소련의 새 권력자가 되리란 관측은 벌써 지닌 5월에 있었다. 5월 24일 정치국원인 그가 당 중앙위 서기를 겸하게 되었을 때다.
정치동원과 당 서기를 겸한 인물은 당시 「브레즈네프」와 「체르넨코」, 「키릴렌코」,「고르바체프」뿐이었다.
더욱이 그가 계승한 당 서기직은 「수슬로프」가 남긴 공석이었다. 당 2인자요 수석이론가였던 「수슬로프」는 크렘린의 킹 메이커로 소련공산당권력의 대부였다.
그러나 「안드로포프」의 재빠르고 순조로운 집권은 예상을 깨는 점도 있다.
소련의 권력 이양은 「차르」시대나 공산정권하에서나 그리 순탄치 않았던 것이 관례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없다는 것이 좀 이상할 지경이다.
「볼셰비키」 혁명은 피의 혁명이었다. 그 혁명은 「레닌」을 독보적 지도자로 만들었다.
그의 사후 다시 한차례 피의 숙청이 휘몰았다. 후계자로 가장 물망에 오르던 「트로츠키」가 「스탈린」, 「카메네프」, 「지노피에프」 등 트로이카에 밀려 추방된 것이다.
그러나 당 제1서기 「스탈린」은 동료였던 「카메네프」와 「지노피에프」를 반목케 하고 결국 모두 처형했다. 공산 독재자의 등장은 그래서 실현됐다.
53년「스탈린」 사후 4인의 각축이 있었다. 「말렌코프」, 「베리야」, 「몰로토프」, 「흐루시초프」다. 4인 당 서기 집단지도체제다.
형식상 잠시 제1인자였던 「말렌코프」가 다른 3인에 의해 동등한 자리로 끌어내려졌고 악명 높은 KGB의장 「베리야」도 동료들에게 처형되었다.
57년 「흐루시초프」는 「말렌코프」와 「믈로토프」 정치국에서 축출하고 제1인자가 됐다.
그러나 인생은 유전이라던가. 64년엔 「흐루시초프」가 자신의 부하들인 「브레즈네프」, 「코시긴」, 「포드고르니」에게 축출되었다. 「흐루시초프」의 축출은 표면상 그의 외교정책의 난맥 때문이었으나 사실은 지나친 권력 집중과 「코줄로프」를 후계자로 삼으려는 낌새에 대한 반발이었다.
「코시긴」 수상, 「브레즈네프」 당 제1서기, 「포드고르니」 최고회의간부회의장의 3인 집단지도체제는 대표적 트로이카체제였다.
그러나 70년대는 실상 「브레즈네프」 1인 체제였다. 나머지 두 사람은 형식상 들러리였다. 그나마 77년 「포드고르니」는 해임되고 그 자리를 「브레즈네프」가 겸임, 80년 「코시긴」은 사망했다.
「브레즈네프」 사후의 권력이 「안드로포프」 1인에게 독점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수상직과 최고회의 간부회 의장직을 동료들에게 나눠주고 서서히 장악해간 「브레즈네프 방식」은 예상됨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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