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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지지율과 극장정치의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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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
정치외교학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지난 2년을 실망과 좌절의 시기였다고 비판한다. 소통 부재로 국민통합은 뒷걸음질쳤고 인사 실패에 의한 국정난맥으로 이렇다 할 내놓을 업적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외교안보 분야를 비롯해 국정 전반에서 그런 대로 선전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한다. 이전 정권들에서 나타났던 탄핵정국이나 광우병 소동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는 없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렇게 서로 다른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은 이들 사이에 합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오로지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안정적 지지율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그런 대로 순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 지지율이 지금 위기에 봉착해 있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 60%대였던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져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윤회 사건’으로 더욱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사의란 말이 나올 정도로 여타 어느 국가기관보다도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압도적으로 높다.

 국정에 영향을 미치는 11개 주요 기관에 대한 아산정책연구원의 신뢰도 조사에 의하면 대통령이 단연 높게 나타나고 있다.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은 국회이고 그 다음이 사법부, 언론, 종교단체, 정부 순이다. 한마디로 국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기관들을 국민이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선전하고 있는 반면, 여타 국가 주요 기관들은 왜소화의 트랩에 빠져들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승자 독식의 대립정치가 만들어내는 산물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도 ‘의회는 바퀴벌레만도 못하다’는 평을 받고 있고, 대법원은 ‘법복을 입은 정치인들의 집합소’로 변질됐다는 비아냥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국회와 사법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미국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가 고전하는 이유는 그가 지나치게 초연하고 독선적이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도 이 점에서 오바마보다 결코 못지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안정적이다. 불가사의란 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인사 실패, ‘문고리 권력 3인방’을 둘러싼 잡음, 수능시험 혼란, 병영 총기 난사에 이르기까지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서 대통령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데도 말이다. 국정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은 국민들로부터 외면 내지 무시당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의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국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대통령에게만 매달리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한 보수적인 원로의 걱정이다. 반면 진보적인 인사는 이런 국민 정서를 권력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걱정한다. 시각은 다르지만 이런 현상이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만 두드러지고, 국가의 주요 기관들이 왜소화될 경우 대의 민주주의가 흔들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통령의 단독 연출과 연기에 국민이 갈채를 보내는 극장정치가 등장할 위험이 높다. 대의 민주주의가 관객민주주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극장정치의 징후는 이미 우리 현실에 나타나고 있다. 작금 신문광고에 등장하기 시작한 ‘대통령님께 호소합니다’ ‘대통령님께 드리는 글’ 등을 보라. 대통령밖에 기댈 곳이 없다는 국민 정서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국회와 정당은 물론 국가의 주요 기관들을 불신하는 민심의 현주소일 수도 있다.

 민주화 이후 우리 대통령들은 이런 극장정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국내문제가 잘 안 풀리니까 점수 따기 쉬운 외국 여행을 자주 하게 되고, 국회가 비협조적이니까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대통령의 단독 플레이가 늘어났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금 이런 유혹의 문턱에 서 있다. 경제는 안 풀리고, 국가기관들은 비틀거리고 있으며, 시민사회는 지리멸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극장정치는 정상적인 대의정치가 아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겠다는 박 대통령. 우리 정치의 만성적 고질병인 비선에 의한 인치(人治)를 제도에 의한 법치로 정상화시켜야 한다. 그 첫걸음은 왜소화된 국가기관들을 활성화시켜 극장정치의 유혹을 극복하는 일이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