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세울 곳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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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실 서울시가 지하주차장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날로 격심해지는 도심권의 주차난 해소를 위해 사설주차시설을 적극 권장한다는 방침이 여러차례 발표된 바 있으며 대규모 지하주차장을 건립한다는 계획도 거의 해마다 서울시의 새해 시정목표가 되어왔다.
그러나 주차미터기를 셜치, 도심권의 노상주차료는 꼬박꼬박 징수하면서도 지하주차장 문제는 언제나 흐지부지되곤 했다.
대규모 지하주차장을울 만들려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고 기술상 난점이 많다는 것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가뜩이나 다른 나라의 도시에 비해 도로율이 5∼10%나 낮은 서울에서 주차할 곳이 없다고 버젓이 노상추차를 묵인, 교통난을 가중시키고 있음은 예삿일일 수가 없다.
우리나라 전체 등록차량 60만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서울 및 그 근교에 몰려있다. 선진국의 대도시에 비해 차량수는 훨씬 적지만 도로율, 지하철공사 등 요인 말고도 도시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지 못한 탓으로 서울도심의 교통혼잡은「지옥」을 연상시킨다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현재 연간 35만대인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의 생산 능력은 86년에는 60만대에 이르리라고 한다. 그중 상당부분이 수출된다해도 내수도 그만큼 늘어난다고 할 때 서울의 교통체증은 한층 심각해질 것이 틀림없다.
물론 지하찰공사가 한창인 지금과 같은 형편에서 서울의 도심지에 대규모 지하주차장을 건설하는 일은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가령 을지로 구간 같은 곳은 2백대 정도가 주차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데 2백억원 가량이 들것으로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한대를 주차시키는 시설을 만드는데 1억원씩이나 든다는 것은 부담치고는 분명히 엄청나게 큰 액수다.
인구 9백만을 육박하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변변한 지하주차장 하나 마련치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정책당국의 무정견과 무능의 표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70년대의 개발붐과 함께 서울의 한복판에도 지하를 파는 작업은 활발히 벌어졌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당잠 시의 수입과 직결되는 지하상가였지 지하차도 같은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사업은 아니었다.
만약 그때 당국이 보다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이 문제에 대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현재의 여건에서 대규모 지하주차시설을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이룩해야할 사업임을 거듭 강조하고자한다.
가까운 일본 동경의 은좌에서 차량이 체증없이 빠지는 것은 은좌 바로 밑 지하에 한꺼번에 수천대를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주차장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빌딩마다, 아파트마다 지하주차장이 있고 지하주차장이 없는 건물은 제값을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질 수가 없는 서울의 주차난 해소를 위해서는 보다 고차원적인 정책적 결단이 있어야할 것이다.
앞으로 세워지는 학교, 법원등 공공건물이나 공원 밑에는 비용이 들더라도 지하주차장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 시험한 것처럼 민자를 동원하는 방안도 강구해 봄직 하다. 지하주차장이나 주차빌딩을 세우는 업체에 대해 요금을 마음대로 받게 한다든지, 기타 특혜를 주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때마침 서울시에서는 지하철 2호선인 을지로구간에 대규모 지하주차장을 건설할 것을 검토한다는 소식이다.
이번만은 그 계획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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