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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헌법 지킨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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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문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수
김형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대우
지난달 28일 여야 지도부가 예산안을 기한 내에 처리키로 하고 합의문을 들고 웃고 있다. [김형수 기자]
정종문
정치국제부문 기자

국회가 헌법을 지켰다. 12년 만이다. 2일 본회의에서 2015년 예산안과 함께 세입 예산부수법안까지 통과시키면서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예산안을 통과시키던 오랜 관행을 깼다. 2일 오후 11시쯤 예산안을 통과시킨 뒤 여야 원내대표는 본회장 앞에서 모처럼 웃었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우윤근 원내대표의 결단과 용기, 철학이 없었으면 안 될 일”이라고 치켜세우자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도 “우리 모두가 협력해 만든 일”이라고 화답했다.

 합의가 열매를 맺기까지 곳곳에 암초가 도사렸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과 14개 예산부수법안이 대표적이었다. 가까스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었으나 이날 오후 4시 본회의에서 양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예산부수법안 중 하나인 ‘상속세법 개정안’이 부결되면서 합의가 송두리째 물거품이 될 뻔한 위기도 맞았다. 하지만 종국엔 ‘합의 정신’을 살려나갔다.

 법정시한을 준수하게 한 밑바탕은 ‘국회선진화법’이었다. 선진화법은 2012년 일부 개정된 국회법 조항을 일컫는 말이다. 예년보다 한 달 가까이 예산안을 먼저 처리하고 나니 야당에서조차 “선진화법이 참 세긴 세다”는 얘기가 나온다. 선진화법엔 예산안과 세입 예산부수법안이 11월 30일까지 끝나지 않으면 올해부터는 이튿날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보는 조항(85조 3항)이 들어 있다. 이 때문에 14개 예산부수법안의 경우 대부분 소관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도 하지 않았으나 국회 본회의까지 직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진화법만으로 예산안이 제때 통과됐다고 볼 순 없다. 야당의 협조가 없었으면 여당은 예산안과 부수법안을 단독처리해야만 법정기한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야가 대승적으로 생산적 합의를 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정의화 국회의장)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제 예산 심의 기능은 날갯짓을 시작했다. 하지만 쟁점 법안 처리가 올해 마지막 숙제로 남아 있다.

 쟁점 법안은 주로 경제 관련 법안이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야당이 주장하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 국정조사 요구까지 얹으면 풀기 쉽지 않은 고차방정식이다. 예산국회에 이어 주요 법안은 ‘여야 합의’로 처리해 정치가 경제에 새 호흡을 불어넣어 주길 기대한다. 야당은 선진화법을 만들 때부터 예산을 내주는 대신 법안 처리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쟁점 법안은 재적의원 ‘5분의 3’이 동의해야만 처리할 수 있어 여당 단독 법안 처리가 불가능하다. 예산과 법안의 양 날개를 여야가 한쪽씩 나눠 가진 셈이다. 법안 심의 때도 예산안 처리 때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의 정신’이 비상(飛上)할 수 있다.

글=정종문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