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사랑은 아무나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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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떠도는 사건 하나. 15세 중학생과 40대 연예기획사 사장. 과연 그들이 사랑을 했을까.

 2011년 8월. 여중생과 40대 남자가 병원에서 우연히 만났다. ‘키도 크고 예쁘게 생겼다. 연락해라. 연예인 만들어 줄게’라며 남자는 명함을 건넸고 다음 날 만나 강제로 키스하고 일주일 후엔 차 안에서 성관계까지 가졌다. 2012년 그녀는 임신을 알고 가출해 동거하다가 2012년 말께 아기를 출산한 후 남자를 고소했다.

 1심에서 12년, 2심에서 9년을 선고 받았으나, 대법원은 범행이 이뤄진 처음 상황보다는 나중 주고받은 편지 내용 등에 초점을 맞춰 둘은 사랑을 한 거라며 그 남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가 혹은 폭력·협박 없이 이루어진 13세 넘은 아이와의 성관계는, 비록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성적자기결정권이 있기에 죄가 아니란다. 배는 불러오고 태어날 아이 아버지는 다른 일로 교도소에 가 있고 중학생 신분으로 먹고살 길은 막막하고. 이 상황에도 면회 가서 낄낄거리며 ‘사랑한다. 처음 만났을 때 반했다’란 글을 써서 형광펜으로 하트 뿅뿅 그려 넣은 편지를 매일매일 전달했다는 그녀.

 성관계 후 일어날 일에 대해 이토록 무지한 어린아이에게, 성관계를 자기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준다고? 그들 사랑 또한 대가성 없는 순수한 사랑으로도 볼 수 없다. 당장 쥐여준 돈은 없지만 ‘내 말만 들으면 연예인 만들어 주겠다’는 말만 믿고 배 속에서 아이가 발로 차든지 말든지 연예인으로 성공한 자기 모습만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견디었을 그녀. 그렇게 던진 미끼도 대가다.

 27살 나이 차이에도, 15세 어린 나이에도 진정한 사랑은 있다. 37살이나 어린 여자와 아이 낳고 잘 사는 우디 앨런도 있고 15세 나이에 사랑을 했다는 소설 속 줄리엣과 춘향이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기획사 사장이 그녀를 진정 사랑했다면 딸 같은 그녀의 임신을 알고 나서 가출하라는 말 대신 그녀 부모를 먼저 만나는 게 상식 아닌가.

 하지만 그녀와 성관계를 하던 시기에도 길거리에서 초등학생이며 중학생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이성 관계를 가지려고 시도했다는 그 사람. 그는 상습범이다.

 상대방이 악의를 가지고 자기를 이용하는지, 사랑하는지조차 헷갈려 하는 청소년기 아이들. 그들에게 그의 명함은 엄청난 권력이다. 무죄로 풀려난 그는 지금도 손에 명함을 쥐고서 ‘13세는 넘었지만 성인은 아닌 어린아이들’을 찾아 길거리를 헤맬 거다. 사랑은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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