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싱글맘·가난·폭력, 그래도 가족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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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원 플러스 원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살림
552쪽, 1만5000원

한 개 가격에 한 개를 더 얹어주는 마트의 할인상품처럼 분량이 푸짐한 소설이다. 그런데 벅차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술술 읽힌다. 작가가 골치 아픈 현실을 달콤하게 포장하는 ‘로맨스 소설’의 선수이기 때문이다.

 1969년 런던에서 태어난 모예스는 올 초 국내 출간된 소설 『미 비포 유』로 친숙하다. 영국 로맨스소설가협회가 주는 올해의 작가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는 다채로운 인생 경험을 쌓은 듯하다. 시각장애인 점자 문서 타이피스트, 20대를 위한 짜릿한 휴가 상품을 파는 ‘클럽 18-30’의 홍보물 작가 등을 경험했다고 개인 홈페이지(www.jojomoyes.com)에 올려놓았다. 이후 일간지 기자로 10년간 일했으니 필력까지 갖췄을 터다.

 요컨대 세상 물정에 밝고, 젊은 독자 사로잡는 노하우를 안다는 얘기다. 영국에서도 올해 출간된 『원 플러스 원』은 그런 모예스의 솜씨가 제대로 발휘된 작품이다. 시트콤식 유머, 19금 성애 장면, 과격한 폭력 묘사 (한 번뿐이지만!), 뭉클한 최루 장면이 곳곳에 뿌려져 있다. 모예스는 웃음 버튼과 슬픔 버튼이 어디 있는지 안다는 듯 꾹꾹 눌러가며 독자를 코너로 몬다.

가족애를 강조한 로맨스 소설 『원 플러스 원』을 쓴 영국 작가 조조 모예스. ‘원 플러스 원’은 원만한 가족관계 형성을 돕는 영국의 자선단체 이름이기도 하다. [사진 살림]

 소설은 해피 엔딩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문제투성이였다. 20대 후반의 싱글맘 제스와 초등학생 딸 탠지, 10대 소년 니키, 세 식구는 찢어지게 가난하게 산다. 제스는 낮에는 자존심을 죽이고 청소부로, 밤에는 끈적끈적한 남성 손님의 손길을 뿌리치며 바텐더로 일하지만 늘 허덕인다. 니키는 사실상 이혼 상태인 남편 마티가 전 여자친구 사이에서 난 아이다.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자 불굴의 명랑 캐릭터인 제스가 덥석 맡아 키운다. 하지만 늘 맞고 다니는 괴짜여서 걱정거리다.

 문제는 수학천재 탠지가 학비가 엄청난 사립학교에 덜컥 합격하면서부터다. 학비의 90%를 장학금으로 받게 돼 첫 해 500파운드만 내면 되지만 그마저 쉽지 않자 거액의 상금을 노리고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수학 올림피아드에 참가하는 여정이 소설의 뼈대다. 시험을 치르는 탠지는 물론 독한 방귀를 수시로 뀌어대는 송아지만한 개 노먼도 함께하는 가족여행이다. 이 여행에 주식 내부자 거래 혐의로 몰락 중인 30대 중반의 체격 좋은 IT 기업 갑부 에드가 우여곡절 끝에 끼어들며 제스와 사랑에 빠진다.

 소설의 골격은 제스와 에드의 로맨스다. 둘의 결합으로 아이들까지 행복해지는 설정으로 가족애를 강조한다. 서먹하던 가족 관계가 회복된 덕택에 갈등이 풀리기도 한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니키가 가족으로 녹아드는 장면은 한국에서도 관심거리인 ‘사회적 동거’를 연상시킨다. 비현실적인 몇몇 대목에 슬쩍 눈 감으면 깜빡 행복감에 빠질 수 있는 감칠맛 나는 읽을거리다.

[S BOX] ‘개그 콘서트’ 같은 모예스의 화법

모예스의 소설을 끌고 나가는 힘 중 하나는 웃음이다. 시니컬한 상황 묘사와 인물의 대사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여주인공 제스가 저녁마다 세 시간씩 일하는 ‘페더스’ 펍의 메뉴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곳은 다양한 종류의 죽은 동물을 감자튀김과 함께 내오고, ‘샐러드’라는 단어에는 코웃음 쳤다.’ (72쪽) 소고기나 돼지고기 말고 다른 종류의 고기 요리가 제공된다는 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자기 코가 석 자여서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에드가 찾아뵙지 못하겠다고 하자 사회복지사인 에드의 누나 제마,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아버지는 네가 천재라도 되는 줄 아셔 (…) 그러니까 꼭 참석해서 네 얼굴을 보여드려. 그리고 죽어가는 아버지들한테 아들들이 하는 말들을 하라고, 알겠니?” (117쪽)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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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12월 주제는 ‘세월이 흘러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가족의 소중함을 그린 소설, 오랜 세월 자부심을 이어 온 맛집과 동네 서점 이야기를 골랐습니다. 2014년의 마지막 달 , 지키고 싶은 자신만의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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