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가 꼬치꼬치 간섭 … ‘원 맨 컴퍼니’가 경영에 가장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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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석 넥센 히어로즈 대표는 “아직 적자고 빚도 300억원이나 있지만 2017년께 흑자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를 관전하고 있는 이 대표. [뉴시스]

가을야구가 끝났다. 올해엔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친 넥센 히어로즈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것도 이장석(48)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다. 미국 메이저리그식 야구를 한국에 이식 중인 ‘이장석식 신경영’에 재계가 귀를 열었다. 지난 21일 이 대표는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이 주관하는 조찬회에 강사로 나왔다. 그는 강연에서 “야구 산업화가 절실하다” “스타 선수가 무조건 감독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소신을 밝혔다. 특강 뒤 이 대표와 2시간가량 따로 만났다.

 이 대표는 메릴린치 등을 거쳐 투자전문회사 센테니얼인베스트먼트를 경영한 기업인 출신이다. 2008년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 히어로즈 야구단으로 바꾸고 야구인으로 변신했다. 그의 경영은 강정호·박병호·서건창 등 히어로즈의 간판선수 이니셜을 딴 강·박·서 리더십으로 요약된다. 이 단장의 전경련 특강과 인터뷰 요지를 1인칭 화법으로 재구성했다.

강한 자만 기록된다

 프로야구는 각 팀마다 1년에 128차례씩 치르는 전쟁이다. 1982년 개막 이래 지금까지 33번의 승자만 우승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히어로즈에 과감한 투자를 이끈 원동력은 ‘치욕’이었다. 2011년 처음으로 꼴찌(8위)로 떨어졌다. 이전까지는 재정적 정상화 방안이 제일 큰 숙제였다. 에이스를 다른 구단에 팔았고, 현장과 마찰도 생겼다. “야구 역사를 후퇴시킨 사기꾼” “언제 팔고 나갈지 모르는 먹튀” 같은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 바깥의 목소리보다는 성적 최하위가 더 큰 충격이었다. 인적 자원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박병호·김병현·이택근 등 실력파를 스카우트했다. 올해 시장은 ‘넥센 드라마’가 펼쳐졌다고 했지만 사실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삼성이 신기록을 세우는 데 제물이 됐기 때문이다.

 시장의 비난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실적이다. 지금 우리는 60점이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70점, 10만 명쯤 되는 팬덤을 확보하고 재정적으로 자립해야 80점쯤 될 것이다. 사실 비즈니스의 세계는 더 냉정하다. 중국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秦)나라만 기억되듯 말이다.

박수받아야 시장이 커진다

 야구단 경영에 적극 참여하는 팬들이 늘어나면서 소통이 중요해졌다.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한 5개 구단이 모두 감독 선임 과정에서 홍역을 치르지 않았나. 현역 시절 최고였다는 이유로 쉽게 감독으로 발탁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메이저리그식 오너 구단인 히어로즈는 박수받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조직부터 다르다. 마케팅팀이 15명으로 여느 구단의 3~5배나 된다. 올해 예상 매출 290억원 중 스폰서 후원이 160억원이다. 넥센타이어를 포함해 현대해상·미래엔 등 70여 곳이다. 이곳 임직원은 야구장에서 시구(始球)도 하고, 회식도 한다. 어떨 땐 VIP를 모시고 와서 비즈니스도 성사시킨다. 파트너의 성공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비즈니스다. 한국 프로야구는 한국 경제에서도 분명한 존재 이유가 있다. 여가와 흥미, 활력을 제공한다. 산업화 요건도 갖췄다. 더 큰 박수를 받아 자생력을 확보하는 게 우리 숙제다. 기업 경영도 박수받아야 성공하는 시대다. 또 한 가지, 한 번 성공이 두 번 성공을 보증하지도 않는다.

서로 믿으니까 안심하고 맡긴다

 히어로즈는 선수단 87명을 포함해 170명으로 구성돼 있다. 최고경영자(CEO)는 선수 발굴, 즉 미래 경영에 집중한다. CEO 직속으로는 스카우트팀과 마케팅커뮤니케이션팀만 운영한다. 고교생 100여 명을 관리한다. 유망주를 선발한다면 어떨 땐 그의 동선을 파악해 성실함까지 평가한다. 다른 업무는 철저히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남궁종환 부사장은 홍보와 국제전략, 연봉 협상을 담당한다. 지금은 거리 두기를 한다. 조태룡 단장은 조직 운영과 관리, 마케팅을 총괄한다. 현장은 염경엽 감독에게 일임한다. 감독을 맡기기 전 그에게서 3시간 동안 팀의 운영과 성공궤도로 가는 길을 들었다.

 지금은 거리 두기를 한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나서도 따로 만나지 않았다(※이 대표가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GM(General Manager·단장) 개념이다. GM은 선수 영입, 트레이드, 시설 관리를 총괄하고, 감독은 게임 운영에 집중하는 게 미국식 GM 야구다).

 어느 기업의 오너가 공장장에게 생산대수·품질을 꼬치꼬치 간섭한다면 그것은 ‘원 맨 컴퍼니’가 되겠다는 뜻인데, 현대 경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다.

이상재·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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