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YS 측 "몰랐던 일" DJ 측 묵묵부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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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검찰이 안기부 도청팀장이었던 공운영씨의 자택에서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을 대거 압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건 관련 당사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측근인 김기수 전 수행실장은 29일 "김 전 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당황스러워한다. 이런 일들을 대통령이 다 알 수 있었겠느냐"며 YS는 불법 도청과는 무관함을 주장했다. 김 전 실장은 "1997년 대선 때도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대선 자금을 불법 모금하던 상황은 YS가 전혀 몰랐다"며 "이번 사건도 언론 보도만 통해 아는 실정이며 일단 지켜보자는 쪽"이라고 전했다. 그는 "어느 나라나 정보를 다루는 기관은 다 있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대공 업무 때문에 감청은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불법 도청이 감행됐다는 사실은 당혹스럽다"며 "국가신인도도 큰 타격을 받을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안기부 도청팀인 미림팀을 배후에서 지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YS의 차남 김현철씨는 측근을 통해 "미림팀의 보고서를 받은 적도 없고 기획한 적도 없다. 국정원 전 직원인 김기삼씨의 말만 듣고 내가 개입했다고 하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 측근은 "김현철씨도 오정소 전 안기부 1차장이 빨리 전모를 밝혀줬으면 하는데 오 전 차장이 나타나지 않아 답답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YS정권의 실세였던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미림팀 보고서를 따로 받았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다만 직무상 올라오는 안기부의 동향 보고서는 봤지만 그건 그 자리에 있으면 당연히 하게 되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 전 수석은 "나나 대통령(YS)은 안기부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보고서의 내용을 크게 신뢰하지는 않았다. 내가 김현철.오정소씨와 고교 동문이라고 해서 무슨 커넥션이 있는 것처럼 보도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 중 삼성의 기아차 인수 문제에 대해 DJ가 언급했다는 부분에 대해 최경환 비서관은 "사실무근이다. 김 전 대통령은 법에 반하는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DJ정권의 실세였던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근 동교동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 도청 파문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박 전 실장은 "재미동포 박인회씨는 뉴욕에 있을 때 알고 지낸 사이다. 뉴욕 소재 한인 사업체인 D사 김모 사장의 처남"이라며 "나를 찾아와 (녹취록) 얘기를 하기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쫓아보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박 전 실장에게 녹취록을 전해주자 박 전 실장이 "고맙다"고 말했다는 박인회씨의 주장과 상충하는 발언이다. 박 전 실장은 그러면서 "나는 (언론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 말 않고 있으면 그냥 넘어갈 텐데 지금 맞다, 아니다 하면 또 기사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이번 불법 도청 파문에서 핵심적인 정보를 쥐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천용택 전 국정원장과 오정소씨 등은 주변과 연락을 끊고 있다.

김정하.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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