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고 이구씨 '황세손' 호칭 이래저래 성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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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한제국 황손(皇孫) 고 이구(李玖)씨 장례식은 성대히 끝났지만 몇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호칭 문제다. 문화재청과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그의 타계 사실을 알리며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라고 했다. 국내 대부분의 언론도 이를 따랐다. 고인의 삶이 우리 근세사의 아픔과 겹치는 점을 안타까워하며 '너무 인색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이심전심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그를 '황세손'이라 한 것은 이래저래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황세손이려면 고종이 황제 승계권자로 지명해야 했다는 것. 1919년 서거한 고종 황제는 1931년 태어난 손자 이구씨를 보지 못했다. 고종을 이은 마지막 황제 순종 역시 1926년 타계해 조카인 이구씨를 못봤다.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한 통감부 시절인 1907년 영친왕은 황태자로 책봉된다. 이를 근거로 고인을 '황세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시 황제였던 순종을 빼고 고종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순종을 기준으로 하면 순종의 동생인 영친왕은 '황태제'가 된다. 예컨대 숙종의 뒤를 이은 경종의 동생 영조를 '왕세제'라고 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영친왕이 황태제라면 그 아들 이구씨는 '황세손'일 수 없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이런 문제는 논의할 겨를조차 없었다.

망국 상황에서 뒤죽박죽이 된 황손 가계 호칭을 재정립해야할 필요가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징적 예우 차원에서 '황세손'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선 민주사회인 오늘날 법적으로 평민에게 그같은 호칭을 붙이려면 국민적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황세손'이라는 용어 그 자체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전통 호칭으로 보면 왕세자의 후계자는 '왕세손'으로, 황태자의 후계자는 '황태손'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1897년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왕이 황제로 격상됐다. '왕-왕세자-왕세손'이거나 '황제-황태자-황태손'둘 중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다.'황세손'이란 용어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짬뽕 호칭'인 셈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염두에 둘 때, 고인을 '황손(황제 집안의 후손)'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한 후에 각계 전문가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호칭을 결정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정명'(正名:이름과 명분을 바로 잡는다) 사상을 고리타분한 옛 얘기로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아쉬움은 영결식 후 창덕궁~종묘 구간만이라도 상여를 메고가는 조선왕실의 마지막 전통 예법을 보여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점이다. 시민들이 캐딜락 영구차를 보러 거리에 나간 것은 아니었겠기 때문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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