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한-불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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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프랑스는 서방진영 안에서 독특한 외교노선을 걷고 있는 나라다. 「드골」은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리더십에 도전하여 독자노선을 걸으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통합군사기구에서 탈퇴했었다.
「드골」의 그런 노선은 「퐁피두」시대의 고립주의를 거쳐 「지스카르-데스탱」과 「미테랑」의 「독자적인 유럽」, 블록체제의 타파로 이어져 내려 왔다.
특히 「미테랑」의 사회당 정부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관계를 증진하는데는 과거 어느 정권보다도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판단하여 그 방면의 노력을 배가하고 있는 인상이다.
프랑스의 독자노선은 필연적으로 한-불 관계에도 파급되어 가령 유엔에서 한국 문제가 토의되던 시절 프랑스는 미·영·일·캐나다 같은 서방진영의 우방들에 비해 한국 지지에는 대개 소극적이었다.
그러다가 「미테랑」 정부가 들어서고부터는 남북한 양쪽과의 관계의 폭울 넓히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지난 2월 파리에서 열린 한-북 외상회담에서는 전두환 대통령의 올 여름 프랑스 방문이 논의되기도 하고 「미테랑」 대통령의 외교담당보좌관 「필립·마셰페르」 상원의원은 남북한 긴장 완화의 「다리」 역할을 자청하고 나서서 서울과 평양을 왕복했다.
그러나 「마셰페르」의 남북한 왕복은 북한의 경직된 태도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북 정상회담도 연내 실현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파리에서 전하는 보도로는 프랑스가 곧 북한을 승인할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달하순께 프랑스의 「셰송」 외상이 방한하여 한-불 외상회담이 열린다면 프랑스의 그런 자세가 가장 중요한 의제로 토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이 한국은 제 5공화국 탄생 이후 서방진영의 나라에 의한 북한 승인에 무턱대고 반대만 하는 종래의 입장을 버리고 우리 쪽에서도 공산권국가들과의 관개를 개선하고 외교관계의 수립을 위해서 적극 외교를 펴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이런 적극 노선은 공산권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프랑스는 현 단계에서 북한 승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프랑스는 남북한의 긴장 완화를 위해서 중재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나라다. 그리고 한국과 동구권의 관계 개선에도 프랑스는 건설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가 있다.
그런 프랑스라면 북한을 승인하기에 앞서서 한반도의 전반적인 긴장 완화와 남북한 교차승인을 위해서 프랑스가 가진 영향력과 압력 수단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보는 것이 일의 순서일 것이다.
프랑스가 오히려 한국을 상대로 「북한 카드」를 이용하여 경제적인 실속을 차리려 든다면 결과적으로 두 나라 관계는 크게 후퇴하고 말 것이다.
한국과 프랑스간에는 원자로, 서울∼대전간 고속전직, 프랑스제 에어버스 수입 같은 경제 협력 문제가 걸려 있다.
한국동란 때 이 땅에서 공산주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피를 흘린 프랑스가 대한 프로젝트 수출을 협의하면서 「배한 카드」를 이용하는 일이 있다면 우선 그것은 양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북한문제는 우리의 「아픈 상처」다. 그 상처를 찌르는 「북한 카드」를 우리의 주요 우방이 오로지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은 한-불 관계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같은 논리는 「셰송」 외상을 맞는 우리 쪽에도 해당된다. 한-불 당국자들은 양식을 가지고 도모하는 국제협력이 진정한 협력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이번 기회에 두 나라 관계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만한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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