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내용 싸고 보·혁 격돌|일본서 「교육전쟁」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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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에서 보수·혁신계간에 「교육전쟁」이 불꽃을 튀기고있다.
교육의 내용과 방침을 정하는 것은 일본에서도 문부성이 맡고있다.
그런데도 싸움이 있는 것은 교육계를 그늘에서 지배하는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이라는 실력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일교조는 유치원, 초·중·고, 대학의 교직원을 포괄하는 교원조합으로 종전후인 47년에 결성된 좌익계 단체.
자칭 60만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일교조는 일본에서 최대의 산별 노동조합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규모가 큰 교원조합으로 알려져 있다.
좌익적 색채가 강하며 실제로 일본 공산당·사회당과 둔치의 관계에 있다.
일본 노조에서도 가장 좌익적 색채가 강한 「일본노동조합 총평의회」(총평)에 가입, 「마끼에다」(전지원문) 일교조 위원장은 총평의장을 겸하고 있을 정도다.
일본에서 교과서의 채택은 각 지방교육위원회가 결정한다.
문부성의 검정권은 형식적인 것이었고 일교조는 막강한 조직력을 동원해 각 교육의원회의 교과서 채택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 결과 보수당 정부나 서방진영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적 내용을 담지 않은 교과서, 그 중에도 사회·공민파 교과서는 채택되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그런데 최근 사정이 바뀌었다. 우선 보수세력 내에서 2세들의 교육을 이대로 방치해도 좋겠느냐는 반성이 강하게 일어났다.
자민당 정권을 「부패한 장기잡권정당」 등으로 몰아 붙이는 교과서로 교육받은 2세들이 자라서 혁신세력의 편에 선다면 그것은 현 일본의 국체나 정체에도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는 자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세력이 국민의 확고한 지지 위에 국회 내에서 안정다수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일본정부는 이 같은 안정다수를 배경으로 작년부터 반격을 개시했다.
우선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권을 강화, 이데올로기 냄새가 나는 부분을 과감하게 도려냈다.
지난달 25일 끝난 내년도 신학기용 초·중·고교 교과서의 검정내용은 전쟁 전의 제국주의적 사조를 담고 있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다.
예컨대 「천황의 사」는 「천황의 몰」로, 중국에의 「전면침략」은 「전면침공」으로 바뀌었으며 남경점령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그린 내용에서는 「폭행, 약탈, 방화」라는 부분과 「중국인 희생자가 20만명」이라는 부분이 삭제됐다.
마법 제9조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잘리고 『자위연에 대해서는 구위를 위한 전쟁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학설이 있다』는 부분이 삭제된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보수계의 공세가 치열한 가운데 지난달 28일 열린 일교조의 제57기 정기대회는 한때 위세 당당하던 이 조직의 몰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나가사끼(장기) 현 시마바라(도원)시에서 열리기로 돼 있던 이 대회를 시 당국이 대회장허가를 해 주지 않아 5개 호텔에 나뉘어 「모니터TV」를 통해 의의를 치른 이변을 낳았다.
회의가 열린 시마바라시에는 이 대회에 맞추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우익단체 행동대원들로 험악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날 대회에서 「마끼에다」 의장과 「아스까다」(비조전일웅) 사회당 위원장은 『우익의 하는 짓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국민여론을 환기, 우익을 추격할 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교육전쟁」이 자칫 유혈사태로까지 발전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주고 있다. <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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