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진압"과 "경기부양"대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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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세계경제에 탈출구를 마련하고자하는 서방 7개 선진공업국 지도자들이 4일 파리교외에 있는 베르사유궁에 모였다.
경제정책에 관해서는 현재 2개의 흐름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 진압파, 프랑스는 경기대책 우선파. 바꾸어 말하자면 미국은 중장기 대책으로 세계경제를 재생시키자는 것이며, 프랑스 쪽은 불황의 심도를 약화시키는 단기대책을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세계경제불황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된다면 서방동맹국들의 밑바탕도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작년 오타와 정상회담 후에도 선진국경기는 여전히 침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플레는 한고비 넘겼지만 실업이 증가 일로에 있으며 선진공업국의 실업자수는 모두 2천8백만명에 이르고 있다. 전후 최악의 사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예측으로는 선진 7개국의 올해 실질경제성장률 0·3%. 작년의 1·1%보다 더욱 낮아져 그 만큼 불황도 깊어졌다. 국제통화기구(IMF)가 전망하는 올해 성장률은 0·8%. 선진7개국의 실업률은 작년의 6· 6%에서 올해는 7·6%로 확대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들은 불황이나 실업의 원인은 다름 아닌 미국의 고금리라고 비난을 퍼부어 왔다.
프랑스는 미국의 금리가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유럽경기가 순조롭게 흐르도록 대책을 세울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재정적자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비난에 몰리고 있는 미국은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의회와 교섭중이라는 변명과 함께 폐쇄적인 일본시장이 세계불황을 해결하는데 여전히 큰 두통거리라고 주장한다.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서 일본은 제2차 시장개방정책을 내놓았지만 미국이나 유럽국가의 대일 비판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각국의 의견을 조정해서 불황탈출의 길을 마련하자는 것이 베르사유 정상회담의 주요 목적이다.
유럽국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맞아 2개의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하나는 미국으로 하여금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 달러화가 턱없이 올라갔다, 떨어졌다 하는 난조를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엄격한 대소 정책을 내놓는 미국을 설득시켜 소련과 동구권과의 관계에 정경분리방식을 인정토록 하자는 것이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통화당국의 시장개입에 대해서는 미국도 양보할 움직임이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 주요국의 개입을 강화하는 내용의 베르사유 합의가 나올 것이 틀림없다. 일본의 경우 그 효과에 한계를 느끼기는 하지만 엔화 하락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대소정책에 관해서는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사이에 큰 의견차가 드러나고 있다. 미소 군사력이 균형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소련의 움직임을 봉쇄하자는 것이 미국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소련의 천연가스개발을 지원한다든가 싼 이자로 차관을 제공하는 행위는 미국에 의해 견제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나 독일은 소련으로부터 천연가스구입계획을 세우는 등 서로 손발이 안 맞고 있다.
일본도 사할린의 석유 및 천연가스개발사업에 대한 기재수출만은 대소 경제체제 대상에서 빼 주도록 미국측에 요청하고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일본의 수출공세다.
일본이 구미에 집중호우식 수출을 하여 실업을 수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올 가을 중간선거를 앞둔 「레이건」미국대통령은 일본측에 대해 베르사유 정상회담에 앞서 시장개방 정책을 내놓도록 강력히 요청했으며 「스즈끼」수상은 제2단계 시장개방정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또 금융·보험·운수업의 자유화도 계속 요구함으로써 미국과 일본과의 마찰은 계속 남아있다.
선진7개국 수뇌들이 모인 이번 정상회담은 75년 프랑스의 랑부예 회담부터 시작해서 8번째.
작년 오타와 회담이후 1년 동안 세계경제도 큰 변화룰 겪었다. 맹위를 떨치던 석유가격이 안정되었는가하면 인플레의 폭풍우가 잠들었다. 석유가격하락으로 인플레가 꺾인 것이 플러스였다면 실업은 마이너스인 것이다.
이제 OPEC대신 동서간의 새로운 냉전이 세계경제에 그늘을 드리우기 시작하고 있다.
이번 회담의 호스트 역을 맡은 「미테랑」프랑스대통령은 이번 모임이 세계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지의 여부를 가늠하는 저울눈이 될 것이라고 최근에 말한 적이 있다.
세계경제가 직면한 허다한 문제해결에는 선진국의 합의에 의한 각국의 경제정책조정이 불가피하다.

<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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