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전용 펀드는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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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코 묻은 돈은 안 받아요'.

1950년대 중반부터 일주일에 한 번 어린 학생들이 동전 등을 모아 저금하던 초등학교 '저축의 날'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의 푼돈을 받아봐야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융기관들이 학교저축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측도 교사들이 저축왕 선발 등을 위한 잡무에 시달리는 데다 현금 분실의 위험이 있다며 저축의 날이 폐지되는 것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서울 시내 559개 초등학교 가운데 학교저축을 실시하는 학교는 현재 30% 정도에 불과하다. 대표적 학교저축인 우체국 장학적금의 경우 계좌 수가 전국적으로 2001년 97만여 개에서 올 6월에는 69만여 개로 줄었다. 새마을금고연합회는 2001년 8월 아예 장학적금의 신규 계좌 개설을 중단했다. 새마을금고연합회 관계자는 "학교저축이 저축습관을 길러주는 장점이 있지만 금고의 입장에선 연 이자율이 시중 금리보다 높은 5%가 되는 등 수익성이 없어 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저축이 모습을 감추면서 최근엔 어린이 펀드.증권 등 어린이 전용 금융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B초등학교 3학년 김주희(10)양은 어린이 펀드 투자자로 변신했다. 지난 4월부터 한 달 용돈 5만원을 쪼개 한 증권사의 적립식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김양은 "펀드로 돈을 불리면 10년 뒤 미국 유학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어린이 전용 금융상품은 10여 개. 금융 전문가들은 고사리손들이 부모의 도움을 받아 펀드 등에 투자한 금액이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 어린이 전용 펀드인 '우리 아이 3억 만들기'를 내놓은 M사의 경우 출시 두 달 만에 판매액이 2배로 뛰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우량주에도 투자해 수익률이 높고, 만화 등을 활용한 어린이용 신탁운용 보고서가 매달 발송돼 경제교육에 효과적인 점이 주효했다. S증권은 어린이 경제교실에 참가할 수 있고, 유괴.식중독 등에 대한 보험 혜택을 주는 펀드를 출시해 부모들의 문의가 많다.

그러나 어린이 전용 금융상품이 어릴 때부터 돈을 아끼는 것보다 불리는 것에 관심을 더 두게 해 균형잡힌 경제 감각을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민은행 박철 전문연구원은 "눈앞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춘 투자 상품보다 절약하는 습관을 길러줄 수 있는 학교저축이 장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강현.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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