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먹칠 당한「상승 영국함대」|안팎으로 "휴전" 압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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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장두성 특파원】영국구축함 셰필드 호의 피침 사실이 알려진 직후 의회토론에서 자유당당수 「스틸」의원은 『만약 쌍방의 사상자수가 지금 규모로 계속 붙어 난다면 금주 말까지 총 사상자수는 포클랜드주민(1천8백 명) 수와 맞먹는 수가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아군뿐 아니라 적의 피해도 불어나선 안 되도록 된 이 기묘한 전쟁에서 그의 이 말은 현재 조야를 막론하고 영국정계의 최대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와 같은 우려는 셰필드 호의 피 침과 해리 어기의 격추로「상승의 영국 함대」라는 초기의 신화가 깨어짐에 따라 전혀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현실성울 띠게 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속도로 쌍방의 피해가 계속 불어날 만큼 전쟁이 확대될 경우 국내여론은 물론 영국을 지지하고 있는 미국과 EEC국가들의 단결이 깨어져 영국은 외교 면에서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미 그런 기미는 보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영국은 이제 군사작전과 외교협상을 병행한다는 지금까지의 화전양면정책 중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으면 안될 궁지에 빠져들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내여론은 셰필드 호의 피 침으로 초기의 열세에서 맛본 치욕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고 느끼는 듯, 자국 군사력에 대해 자신감을 되찾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런 자신감의 만회가 그들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낼 유인이 될지, 반대로 태도를 더 경화시킬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최근의 정보로는 아르헨티나함대가 잠수함 2척만 포클랜드 수 역에 남겨 두고 모두 본토해안으로 철수 중이라고 한다.
영국의「핌」외상은 5일 의회토론 중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외교협상에 적극 임하겠다고 말했다. 「핌」외상은 분쟁 초기부터 늘 유화적 발언을 해 왔지만 그런 발언과 상관없이 영국은 군사행동을 취해 왔기 때문에 그의 말이 곧 영국정책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벨그라노 호와 셰필드 호의 침몰 이후 내외분위기가 군사행동의 억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선 미국 쪽에서「레이건」대통령이 전쟁확대에 크게 경악해서 영국 쪽에 협상을 재개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절이 유력하게 나돌고 있다.
「헤이그」미 국무장관은 페루대통령과 협의한 후 페루 측 제의와 미국 측 복안을 종합해서 일단 72시간 휴전을 실시한 후 협상을 재개하자는 제의를 쌍방에 통보했다.
동시에 유엔사무총장도 따로 휴전안을 아르헨티나와 영국에 통보한 것으로 보도됐다. 「레이건」대통령은 쌍방에 더 이상의 피해가 있을 경우 라틴아메리카 안에 반미감정이 고조되어 미국의 뒷마당으로 표현되어 온 중남미의 동맹국들을 잃게 되는 사태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와 보급 면에서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영국으로서는 미국 측의 휴전압력을 거부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다.
휴전을 요구하는 압력은 EEC쪽에서도 강력히 나오고 있다.
아일랜드를 위시해서 프랑스와 서독이 다같이 휴전 후 협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이 같은 반응은 5윌16일에 만료되는 EEC의 대 아르헨티나 금수조치가 그 때까지 휴전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계속되기 어려울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EEC의 금수조치는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포클랜드분쟁에 임하는 영국 측의 도덕적 입장을 서구가 지지한다는 의미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EEC가 이를 철회할 경우 영국 측 입장이 큰 타격을 보게 된다.
국내정치에서도 처음으로 휴전을 요구하는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노동당 좌파의원들이 기안한 휴전요구 안에 5일 현재 70명의 의원들이 서명했다(총 의석 6백35).
영국이 이러한 압력을 고려하면서도 군사행동을 계속하기로 결정할 경우 다음작전의 목표는 포클랜드섬에 대한 부분적 상 륙 작전이 될 것 같다. 런던의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주민이나 아르헨티나 수비군이 밀집해 있지 않은 서 포클랜드 해안에 소수병력을 상륙시키는 것은 큰 인명피해 없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전술전문가들도 이 점에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소수특공대원이 먼저 상륙해서 우선 영국 기를 꽂고 교두보를 설치한 후 상황에 따라 상륙군을 증강시킨다. 그 다음 아르헨티나 수비군의 전초진지를 간헐적으로 기습해서 고립상태에 놓인 이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면서 아르헨티나와의 협상에 기선을 잡는다는 시나리오다.
보수당의「윈스턴·처칠」의원(「처칠」경의 손자)은 아르헨티나 본토의 공군기지를 폭격하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요구하고 있다. 물론 상륙 작전을 시도하려면 공군기지를 먼저 파괴하는 것이 안전하지만 현재의 국제여론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장난처럼 시작된 이 분쟁은 이제 초반전을 치른 후 승패가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화전의 갈림길에서 엉거주춤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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