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성희롱, 인건비 뺏고, 접대 강요 … 대학원생 절반 "나도 부당처우 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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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생인 A씨(26·여)는 지난 학기 지도교수와의 술자리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술에 취한 지도교수가 자신을 포함한 여학생들의 외모에 일일이 등급을 매기고 신체적 특성을 비하하며 놀렸기 때문이다. A씨는 “싫다는 의사표현을 계속했지만 멈추지 않았다”며 “너무 큰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원생 B씨(23)는 “정장 입은 여학생을 훑어보며 도우미 같다고 말하는데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수치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원생 절반가량(45.5%)이 교수로부터 언어·신체·성적 폭력이나 차별, 사적 노동과 같은 부당처우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14개 대학원 총학생회는 지난 6월 전국 대학원생 23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원생 연구 환경 실태’ 결과를 29일 발표했다.

 부당처우 빈도는 남학생(41%)보다는 여학생(52%)이, 석사(41%)보다 박사(54%) 과정 학생이 더 많았다. 전공별로는 예체능계열(51%)의 부당처우 수준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대학원생들의 상당수(65.3%)는 그냥 참고 넘어간다고 답변했다. 그 이유로 ‘학점이나 졸업 등에서 불이익 받을 것이 두려워서’(48.9%), ‘말해 봐야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43.8%) 등을 꼽았다.

 유형별로는 언어폭력처럼 개인존엄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31.8%로 가장 많았다. 의약계열 대학원생 C씨(31)는 “논문심사 날 다과를 준비했는데 교수가 ‘이런 싸구려를 갖고 오느냐. 두 번 다시 논문 못 쓸 줄 알라’며 물건을 집어던지며 폭행 위협을 했다”고 말했다.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사적 업무 지시를 하는 등 자기결정권을 침해(25.8%)하는 경우도 많았다. 자연계열 대학원생 D씨(31)는 “교수 자녀에게 무료로 과외해주는 것은 기본이고 이삿짐을 날라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100만원 인건비 중 70만원을 떼 간다”거나 “논문 심사 때 거마비로 50만~100만원을 주고 한우를 대접해야 한다” 등 학업연구권을 침해한 경우도 20.2%나 됐다. “지도교수의 부인 이름을 공저로 올려 달라”는 등 저작권을 침해한 사례(9.5%)도 있었다.

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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