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인사청문회가 과거사 규명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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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인사 청문회란 정부 중요직 내정자의 자질과 자격을 검증하는 자리다. 이를 위해 업무 수행 능력을 갖췄는지 알아보고 해당 조직의 업무 목표와 합치하는 인물인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업무와 관련한 기본 지식과 철학 등의 전문성뿐 아니라 도덕성과 개혁성도 세심히 살펴본다. 재산과 경력, 주변을 살피게 되고 그러다 보면 더러는 인사 청문회가 당초 심사 범위를 넘어설 때도 있지만 양해가 된다.

그러나 여야가 현재 김승규 국정원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준비 중인 내용을 보면 본래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느낌이다. 말만 인사 청문회지 국정 조사인지, 과거사 진상 규명 위원회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한나라당은 TV로 생중계될 이번 청문회에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출석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난번 문제가 됐던 직무상 월권 부분을 추궁하겠다는 것이다. 또 탈북자 출신의 강철환 기자를 불러 북한의 인권 실태 등을 파헤치겠다고 한다. 두 사람이 김 내정자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NSC 사무차장의 월권 문제를 왜 새 국정원장 인사 청문회에서 다뤄야 하는지도 어리둥절하다. 한나라당은 국정원의 위상과 역할, 정책 추진 방향과 전략 등을 점검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것이 목적이라면 인사 청문회는 전혀 적절치 않다.

열린우리당은 한 술 더 뜬다. 남매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연루 인사 등도 증인으로 출석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과거사 진상을 규명하는 자리도 아니고, 이들에게 국정원장 적격 여부의 심판을 맡기겠다는 것인지 아연해질 뿐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의 정당성을 홍보하겠다는 전략인 모양이나 이는 정도(正道)가 아니다.

여야 모두 인사 청문회를 정쟁의 또 다른 링으로 삼으려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TV 생중계를 통해 인사 청문회와는 전혀 동떨어진 엉뚱한 질문들이 오간다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인사 청문회를 희화화해 무용론이 나올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