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359>|제76화 화맥인맥 월전 장우성(78)|미국 전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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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63년7월에 나는 특별한 계획 없이 미국으로 떠났다.
그저 울적한 심정도 달랠 겸 외국 바람이나 쐬어 볼 요량으로 워싱턴 행을 결정한 것이다. 그래도 미국에 가서 전시할 작품들은 40여점 만들어 배편으로 부치고 비행기를 탔다.
10호 안팎의 소품이 많았고 3절·반절짜리·8곡병풍·가리개·족자 등을 제작했다. 지금은 여행 자유화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초청장이 있어야 외국에 나갈 수 있었다.
그때 내게 초청장을 보내준 사람은 당시 주미한국대사관의 참사관으로 있던 이범석씨(현대통령비서실장)다.
이씨의 부인 이정숙씨가 내게 그림공부를 한 오환회 회원이어서 그와는 친숙한 터였다.
내가 이범석씨에게 미국에 한국화를 소개하고싶다고 편지해서 초청장을 받았다.
초청장을 첨부, 여권을 내고 미국비자를 받을 때는 주한미국대사관의「루이스」씨가 서둘러 줘 수월하게 처리되었다.
「루이스」씨 부인도 오환회에 들어 내게 그림을 배우고 있어서 부인의 선생님이라고 자진해서 도와주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내가 탄 비행기가 일본에서 장시간 정비하느라고 예정했던 시간에 닿지 못했다.
워싱턴에 연락, 공항 출영을 약속 받았는데 내려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두 시간도 아니고 5시간이나 늦었으니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공항에 내리니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사람도 없고, 대사관 전화번호도 모르고, 게다가 전화 거는 법도 몰라 절절 매고있었다.
마음씨가 좋아 보이는 미군에게 부탁, 전화번호부에서 한국대사관 전화번호를 알아 그가 직접 전화를 걸어주었다.
대사관 직원이 대사관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미군의 도움으로 지하에 내려가 짐부터 찾았다. 워싱턴의 7월은 무척 더웠다. 나는 미군에게 캔 맥주를 대접하고 일본에서 사 가지고온 일본담배를 선물했다.
그는 고맙다고 연신『댕큐, 댕큐』를 연발하면서 공항버스를 태워주었다.
어찌어찌 해서 한국대사관까지 무사히 찾아갔다. 그렇다고 대사관에서 유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대사관 직원에게 물어 염치 불구하고 이범석씨 집으로 갔다.
대사관직원이 택시를 잡아 운전사에게 버지니아에 사는 이범석씨 집 주소를 가르쳐 주면서 나를 거기까지 데려다 주라고 부탁했다.
운전사가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이범석씨 집 앞에 내려줬다.
이씨 부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씨 집에 신세만 지고 있을 수 없어 아파트를 빌어 닻을 내렸다.
내가 아파트 생활을 할 때는 이범석씨 부인 이정숙여사가 한국에서 내게 그림공부를 한 워싱턴에 사는 오환회회원 들에게 연락, 그들이 심심찮게 찾아왔다.
하지만 아무일 없이 허송세월만 할 수 없었다. 하루빨리 전시회를 열고 싶어 이범석씨에게 부탁했다.
하루는 이씨가 퇴근길에 내 아파트에 들렀다.
어떤 화랑에 들러 한국에서 유명한 화가가 왔는데 전시회를 한번 갖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다니까, 화랑주인이 대뜸 하는 말이『중국·일본 등지에서 전시회 하겠다고 미국에 와 유명화가라고 자랑하는데 그림을 보니 별것 아니더라』면서 일침을 놓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 화랑에서 그림을 가지고 한번 나와보라고 했으니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밑져야 본전이다』면서 우선 한번 가보자고 했다. 며칠 후 우리는 워싱턴 중심가에 있는 피셔갤러리를 찾아갔다. 그림이 많이 걸러있는 피셔갤러리에 들어갔더니 주인은 무슨 서류를 검토하면서 인기척이 있는데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는 체도 안하고 제 할 일만하고 있어서 내가 잘못 왔는가 보다고 그냥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이범석씨가 무안한 듯 주인에게 다가서서 며칠 전에 왔던 사람이라고 밝히고 그림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래 가지고 간 그림을 늘어놓았더니 앉은 채로 거만하게 그림을 훑어보는 것이었다. 한참을 눈여겨보더니 그때서야 우리들에게 의자를 내놓으면서 앉으라고 권했다.
그러고는 그림이 몇 점이나 있느냐고 물었다. 40여 점된다니까 전시회도 열어주고 그림도 팔아줄 테니 우리 화랑과 계약하자면서 계약서를 꺼내놓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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