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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넌과 조영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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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들의 황금시대가 막 펼쳐지던 1965년 비틀스는 스캔들에 덜컥 휘말리고 만다. 멤버들이 화장실에 모여 마리화나를 피워댄 사실이 신문들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됐다. 하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국가 최고훈장인 '대영제국의 명사'(MBE)를 받기로 한 날. 겁에 질린 비틀스는 이렇게 고백했다. "여왕을 뵙기 직전에 너무 떨려서…." 귀여운 고백 앞에 사람들은 용서를 결심했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떴다지만 비틀스 멤버는 모조리 항구 리버풀 출신의 애송이들이었다. 연장자 존 레넌, 링고 스타가 40년생이니 그들은 당시 20대 초중반. 어물쩍 넘어간 화장실 사건 뒤 대형사고가 다시 터졌다. 69년 존 레넌이 놀려댄 세 치 혀가 문제였다. "기독교는 없어질 것이다. 보라, 우리는 현재 예수보다 인기가 많지 않은가?" 정말 고약했다. 사람들은 길길이 뛰었고, 영.미권 방송사들도 하나같이 방송 금지를 선언했다.

그 무렵의 진풍경이 경찰들의 호위 속에 무대에 섰던 비틀스의 모습이다. 콘서트홀 장외에서 사람들은 "비틀스 못된 ×들"이란 피켓을 든 채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런 사태가 한국에도 일어날 조짐이다. 패티 김.이미자.조영남의 '빅3 콘서트'(18일 아주대)가 문제의 공연이다. 핵심은 조영남 반대운동. 며칠 전부터 수원 곳곳에는 "친일망언 조영남 수원공연 반대"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 등 12개 단체는 연일 1인 시위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일 공연이 취소 내지 불상사로 연결되지 않을까 주최(경기일보) 측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빅3 콘서트 투어는 서울.부산.광주 등 7개 도시 공연을 끝내고 반환점을 돈 상태. 수원.제주 등 6개 공연을 남긴 시점에서 다시 사달이 났다. 수원 시민들은 "한.일 분쟁 대응에서 일본이 한 수 위"라는 인터뷰 발언이 실렸던 산케이신문 등에 조영남이 사과광고를 하라고 주장해 왔다. 재일동포들이 받은 상처를 그렇게 어루만지라는 주문이다.

이 통에 그동안 무대에 함께 서온 패티김.이미자씨도 전전긍긍이다. 앞서의 공연들이 모두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조영남은 공연 직전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이고, 관객은 "조영남 파이팅!"으로 화답하며 분위기는 더 뜨거웠다. 그러다가 수원에서 딱 걸렸다. 지금 상황에서 공연 취소도 안 된다. 출연자 3명의 개런티 정산과 함께 예매된 1000여 명의 티켓 환불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남은 공연도 엉망이 된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선 조영남의 성의 표시가 관건이다. "2개월 전 방송 사퇴로 분이 덜 풀리셨다면, 더욱 자숙하겠습니다"라고 고개를 다시 숙여야 한다. 부관참시라고 징징댈 일이 아니다. 그게 어제 오후 서울 세실레스토랑에서의 대(對) 국민 사과일까? 그렇다면 공은 수원 쪽에 넘어갔다. 이러면 어떨까. "이제는 그를 용서해 주자"고…. 그 경우 수원 시민들은 단호함과 너그러움을 함께 가졌다고 평가될 것이다. 마침 20일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이쯤 해서 36년 전의 존 레넌과 지금의 조영남의 처지를 비교해 보자. 둘 다 기독교와 민족감정을 건드린 신성모독 수준의 설화(舌禍)를 일으킨 주인공. 하지만 존 레넌의 나중은 좋았다. 비틀스는 2년 뒤 해체됐지만, 존 레넌은 오노 요코의 도움으로 '단순 딴따라'에서 '위대한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조영남도 그러길 기대한다. 올해 환갑 나이에 호된 액땜까지 치렀고, 이제는 진정한 가객(歌客)이자 성숙한 사람으로 돌아오길 우리는 기대한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