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만드는데 배가 고프다"…대통령 한복 만드는 김예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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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예진 한복 연구가

궁금했다. 노 대통령 내외의 한복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며 또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를.

한복 연구가 김예진씨(42)를 보자마자 던진 첫 질문이었다. "한복을 만들면서 최고의 국모 의상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우연한 계기(2002년 대선 전)에 사석에서 권 여사를 만나게 됐죠. 첫 느낌은 선생님이나 이웃집 아주머니 같았어요. 제가 선뜻 옷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고 흔쾌히 승낙을 한 게 인연이 됐습니다."

대선 이후 김예진 한복은 '영부인 한복 제작'이라는 타이틀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부부도 김씨가 만들어준 한복을 입었는데 그 과정이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한국에 올 거란 뉴스를 보고 무조건 만들었어요. 신체구조는 사진에 의존했고 지인을 통해 그냥 보냈는데 맘에 들어하셨나봅니다."

▶ 노 대통령 내외. 사진은 지난 대선에 권양숙 여사와 함께 투표하고 있는 모습.

▶니컬라스 케이지 부부

▶힐러리 로댐 클린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마라토너 이봉주가 금메달을 탈때 입은 활옷 또한 김예진씨가 만들었다.

홍보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단번에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나 내 옷을 입는게 싫습니다. 최고가 입었으면 하죠. 남들이 따라하지 못하는 옷을 만들어보고 싶었죠."

그간 김예진씨의 한복을 입었던 국빈이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권양숙,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앤소니 퀸, 니컬라스 케이지 부부, 프로골퍼 펄신의 옷을 만들었는가 하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토너 이봉주가 금메달을 탈 때 입은 활옷을 만들어준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는 '행운'이라며 겸손해했다. 하지만 이런 행운은 거저 온 것이 아니었다. 김씨는 뚝심파 디자이너라는 평판을 갖고 있다. 뚝심의 흔적은 굽어있는 어깨에서 엿보인다. 그의 어깨는 오랜 시간 구부리고 작업하느라 굽어 있다.

김예진 한복은 독특하면서 화려하다. 한복 저고리를 도화지 삼아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그는 "전통미와 현대미가 만나면서 또 색다른 맛이 나온다"고 말한다.

한복 만들기에만 20년을 쏟아부은 그지만 아직도 "한복 만드는데 배가 고프다"고 한다.

지금도 한복 만드는 데 도움이 되면 어디든 가서 배운다. 일러스트레이션, 패턴, 복식, 천연염색 등의 기술과 이론을 배웠고 요즘엔 홍대 임두빈 교수에게 미술 자문을 받고 있다.

그가 이토록 배우는데 열심인 것은 중도 포기한 학업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여고 졸업한 후 사진학과에 진학하려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꿈을 접고 타고난 손재주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한복 만드는 일에 발을 들여 놨다.

"어머니가 한복 만드는 솜씨가 유난히 뛰어난 분이어서 세 자매가 매일 재봉틀 돌리는 소리를 듣고 자랐어요. 손재주가 뛰어나신 어머니의 영향이 컸죠." 덕분에 세 자매 모두 한복 디자이너가 됐다.

김씨는 한복 연구가란 직업 외에 미술작가라는 또다른 명함을 갖고 있다. 2003년엔 한복을 1/5, 1/10 크기로 줄여 미니어처 꼴라쥬 작품전도 열었다. "외국인에게 우리의 한복을 어떻게 알릴까 고민하다 액자에 옷을 넣어 외국인들에게 선물하면 어떨까 란 생각을 했고 바로 실행에 옮긴 거죠. 옷도 작품이란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김씨는 요즘 드라마 의상 협찬('제 5공화국' 육영수 여사의 옷)에 이어 궁중의상부터 서민들이 입은 시대별 의상까지 만들 야심찬 구상에 매달려 있다. "누가 먼저는 해야 발전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디자인이라면 내가 먼저 해보자는 생각이죠."

그는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개량 한복에 대해 '국적불명의 옷'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한복을 싸게 팔기 위해 한복의 생명인 소재와 선을 묵살했어요. 생활 속 양장에 소재를 비슷하게 하고 동정을 달아 개량이란 말을 붙인겁니다."

그렇다면 그의 '한복 철학'은 어떨까. 한마디로 '자존심'이라고 표현했다. "일본의 전통의상 기모노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죠. 반면 우리는 한복에 대해 너무 천대시합니다. 한복을 자주 입자는 것이 아니라 한복을 소중한 예복 같은 옷으로 만들자는 겁니다."

성공을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그는 "배운 기술이 아까워 다시 태어나도 이 직업을 택할 것"이라며 " '한복업계의 앙드레 김'이라고 불리는 것이 포부"라고 말했다.

이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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