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짝퉁'가방도 100만원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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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이양수 특파원

국제 도시인 홍콩은 '짝퉁 천국'이라고 일컬어진다. 중국 대륙에서 불법 복제된 옷.가방.골프채 등 없는 게 없다. 최근 개봉된 '스타워즈 에피소드3'가 극장에서 상영되기 사흘 전에 불법 DVD로 먼저 팔릴 만큼 복제 산업의 위력은 대단하다. 연 1800만 명의 관광객 중엔 짝퉁을 사기 위해 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짝퉁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격도 뛰어 급기야 100만원을 넘는 짝퉁까지 등장했다. 홍콩 정부는 1일 중심가 상환(上環)의 뒷골목에서 에르메스.구치 등 각종 명품 가방을 4000여 개의 짝퉁과 섞어놓고 장사를 해온 기업형 조직 2곳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5만 홍콩달러(약 650만원)인 에르메스의 짝퉁을 8000홍콩달러(약 104만원)에 팔았다.

짝퉁 업자가 제조업자로부터 공급받은 가격은 개당 400홍콩달러였다. 엄청난 바가지 같지만 그래도 짝퉁 가게는 몰려오는 외국손님으로 넘쳐흐른다. 코즈웨이 베이의 한 아파트에 차려진 짝퉁 가게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한국.일본 여성들로 넘쳐난다. 50대 업자는 "단속에 걸리면 벌금을 내고 풀려나와 수시로 가게를 옮겨가면서 영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짝퉁 판매 업체들이 홍콩 전역에 수백 개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홍콩.선전 지역의 짝퉁 단속이 심해지자 요즘엔 판매 가격이 오르고 있다. 한국 여성이 많이 찾는 발렌시아가의 모터사이클 모양 가방은 A급의 경우 선전에서 600홍콩달러(종전 300홍콩달러)로 뛰었다. 홍콩에선 1000홍콩달러를 넘는다.

명품업체들은 중국산 짝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면 사나흘도 지나지 않아 값싼 짝퉁이 설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파리의 명품 가게에선 중국계 손님에게 새 모델을 팔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짝퉁을 만들 샘플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구치의 한 관계자는 "짝퉁을 사는 사람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언젠가 진짜를 찾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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