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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칼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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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민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칼 공장에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오노 다케시(60)와 그의 딸 아야코(28). [김민상 기자]
김민상
문화·스포츠·섹션부문 기자

“출장 갔다가 사온 일제를 (사람들) 앞에서 쓰고 있어요. 사람들이 강의를 들을 때 칼에 집중하기보다 음식과 손놀림을 관심 있게 바라보니까….”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 상궁으로부터 전수받은 궁중음식을 재현하는 한 연구소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작은 오이나 얇은 무를 썰 때 얇고 예리한 칼을 써야 한다”며 “국산 칼도 좋은 칼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본지는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일본 칼을 소개했다. <중앙일보 9월 27일자 토요판 12면> 한국과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일본 업체는 국내 기자들을 처음으로 초청해 제작 과정을 공개했다. 일본 본사 직원은 “김치를 써는 용도로 개발했다”며 팔뚝 길이만 한 가위를 보여줬다. 가위 날만 봐도 큼지막한 배춧잎이 흠집 하나 없이 썰릴 기세였다. 공장 한쪽에는 흰색 마스크와 작업복을 착용한 직원만 들어갈 수 있는 ‘무균실’이 눈에 띄었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안구 절단용 칼’이 이곳에서 나왔다. 공장 직원은 “노령화로 안과 시술이 늘어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일본 기업의 힘을 실감했다. 공장은 일본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기후(岐阜)현 세키시(關市)에 있다. 한적한 곳에 있지만 공장에는 젊은 직원이 많았다. 일본 업체는 직원 복지 혜택을 늘리고 단순 작업을 간소화해 젊은이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했다.

 기사가 소개된 뒤 인터넷에는 뜬금없이 ‘친일’ 공방이 일었다. 품질 좋은 제품이 비싸게 팔리는 건 소비자의 선택이다. 그게 일제인지 독일제인지 따지는 건 부질없다. 친일 논란을 떠나 현실을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식을 세계화하자면서도 정작 관련 기술을 도외시하는 문화 때문에 우리 칼을 만드는 공장은 사람조차 구하기 힘들다. 일본 업체는 “한국의 칼 생산업체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매년 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세계 칼 박람회에서 무섭게 뛰어다녔을 일본 업체 직원들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미슐랭 가이드 별 3개를 받은 세계 유명 요리사의 소매를 붙잡고 일본 칼의 장점을 조목조목 열거했을 것이다. 덕분에 세계 유명 백화점에서 요리사와 함께 개발한 칼 브랜드를 가장 눈에 잘 띄는 공간에 진열할 수 있었다.

 수많은 선조의 목을 베었을 ‘왜도(倭刀)의 후예’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신가. 쓸 칼이 없어 궁중 요리조차 그들에게 맡겨야 하는 현실이 나는 더 불편하다.

글, 사진=김민상 문화·스포츠·섹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