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약수터, 알고 보니 조선 조세법의 터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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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청안현(지금의 충북 괴산군 청안면)의 밭을 심사하여 토질과 작황에 따라 등수(등급)를 나누었다. 이를 기준으로 다섯 고을의 토지에 각각 조세(租稅)를 정하니 균등하게 맞아 떨어졌다.”(세종실록 1444년 7월 13일)

 세종대왕이 눈병 때문에 충북 청주시 초정약수터에서 요양하던 중 연구했던 공법(貢法·조세법) 등을 소개한 책이 나왔다.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은 최근 『세종대왕 123일의 비밀』(사진)을 발간했다.

 세종실록 등에 따르면 세종이 초정약수터에서 연구한 조세법을 공표한 시기는 1444년. 세종은 그 해 봄과 가을 초정리에 행궁(行宮)을 짓고 123일간 머물렀다. 이 시기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 등 조세법을 청안면에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기존 조선의 과세는 답험손실법(踏驗損失法)을 따랐다. 답험은 작황을 현지에 나가 직접 조사하는 것이고, 작황에 따라 등급을 메기는 것을 손실법이라 했다.

 하지만 폐단이 적지 않았다. 가령 어느 지역 농토는 작황이 나빠 C등급 수준인데 조사를 나간 관리가 세금을 더 많이 거두기 위해 A등급으로 판정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세종은 즉위 3년부터 이런 문제를 고민했고 과거시험에 공법 관련 문제를 출제했다.

조사를 담당한 조혁연 연구위원은 “공법을 시행하려면 토지조사 및 등급 표가 있어야 했을 것”이라며 "그 실험지가 된 곳이 바로 초정약수 너머의 청안”이라고 말했다.

 세종은 용비어천가를 지은 정인지(1396~1478)를 청안으로 불러 시범 도입할 조세제도와 농작물 수확의 현황을 점검토록 지시하기도 했다. 책에는 세종이 한글 창제 반대파였던 최만리가 상소를 올리자 그를 유치장에 가두도록 하고 마을 노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베푼 내용도 나온다. 한양-영남대로-죽산-진천을 거쳐 초정에 도착한 5일간의 세종행차 노선 도 적혀있다. 또 1444년에 만들어진 용비어천가 내용 중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고’라는 구절에 나오는 샘이 초정리의 약수(우물)인 사실도 밝히고 있다.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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