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15년 만에 유엔총회 연설 … 반기문에게 김정은 친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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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북한 외무상이 27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오른쪽 사진). 이 외무상은 반 총장과 접견을 마친 뒤 북한 외무상으로선 15년 만에 유엔 총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이 외무상은 “우리의 자주권 위협이 제거된다면 핵 문제는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 사진은 1999년 9월 백남순 당시 북한 외무상(오른쪽)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찾아가 인사하는 모습. [뉴욕=뉴시스, 중앙포토]

북한 이수용 외무상(외교부 장관)의 유엔 외교가 끝났다. 마지막 날인 27일(현지시간)이 가장 바빴다.

 이 외무상은 이날 오후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했다. 북한 외무상이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한 건 1999년 9월 백남순(2007년 1월 사망) 이후 15년 만이다. 이 외무상은 연설을 하기 전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친서 전달은 일종의 파격이다. 반 총장은 적절한 기회가 된다면 한국 정부와 협의해 방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해 왔다. 그런 만큼 허를 찌르는 북한식 기습 외교다. 유엔 소식통은 “친서엔 특별한 게 없다. 아주 의례적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하지만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유엔 사무총장에게 처음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 온 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15년 전과 비교할 때 북한이 이번에 선보인 대유엔 외교는 공격적이었다.

 가장 큰 차이는 핵 문제에 대한 입장 변화다. 백 외무상은 당시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제네바 합의(94년)에 따라 핵이 동결됐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이 외무상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 압살 전략이 필연적으로 가져온 것이 핵 보유 결단”이라며 “그 누구를 위협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그 무엇과 바꿔 먹을 흥정물은 더더욱 아니다”고 핵 보유를 정당화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이 완전히 종식돼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에 대한 위협이 실질적으로 제거된다면 핵 문제는 풀릴 것”이라고 미국에 책임을 전가했다.

 인권 문제와 관련해 이 외무상은 “미국이 우리의 인권 문제에 대해 걸고 드는 것은 위선”이라며 “인권 문제를 특정한 국가의 제도 전복에 도용하려는 온갖 시도와 행위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는 나라들과 인권 대화와 협력을 해 나갈 용의가 있다”며 국제사회와 대화할 여지를 남겼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과거 북한은 유엔 무대에서 상당히 수동적으로 움직였는데 이번에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이고 북·미 관계도 진전을 보이지 않자 국제사회를 통해 정권 인정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15년 전과 별 차이가 없는 부분도 있었다. 비방이다. 이 외무상은 총회 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을 겨냥해 “남조선은 꿈같이 현실 불가능하며 허황된 남의 식의 통일방안을 들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15년 전 백 외무상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한쪽이 다른 쪽을 변화시키려 한다면 대결과 충돌밖에 가져올 게 없다”고 경고했었다.

 이번에 선보인 북한의 유엔 외교에 대해 경남대 김근식(정치외교) 교수는 “북한이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외무상을 보내고 김정은 친서를 전달하는 등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남북이나 북·미 관계에 연연하기보다 유엔의 일원으로서 국제무대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서울=정원엽 기자

"자주권 위협 없어야 핵 문제 해결"
이수용 외무상, 미국에 책임 전가
국제사회에 대화 가능 국가 강조
친서 별 내용 없지만 파격적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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