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없는 스님' '불전함 신도회 관리'… 불광사 지홍 스님의 '사찰 개혁'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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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에 있는 불광사는 올해로 꼬박 마흔 살이다. 1973년 광덕 스님에 의해 불광회가 출범했고 지금은 송파구 석촌동에 지상 5층, 지하 5층 규모로 있는 도심 사찰이다. 매주 열리는 일요법회에 참석하는 신도 수만 800~1300명 가량 된다. 그럼에도 불광사 회주인 지홍 스님은 ‘통장 없는 스님’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뒷주머니를 찬 것도 아니다. 이유가 있다. 지홍 스님은 앞장서서 불광사를 ‘통장이 필요없는 스님들이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조계종단이 가야하는 방향이다. 그걸 불광사에서 세월을 앞당겨 시험하고 있다. 그래서 창립 40주년을 맞은 불광사의 실험에 불교계가 주목하고 있다.

◇불전함 공개와 투명한 재정 운영=불광사에서는 매월 1회 사찰운영위원회가 열린다. 신도들이 시주한 불전함은 스님도 마음대로 손을 못 댄다. 회주 스님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불광법회 이정민 신도회장은 “불광사는 불전함을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하고, 사찰의 재정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한다. 여기에 대한 신도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신도들의 자발적인 참여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광사의 연간 예산은 약 50억 원이다. 매월 사찰운영위원회와 100여 명이 참석하는 신도회가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지홍 스님은 올해 초 간경화가 간암 초기로 진전돼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간이 나쁜 것은 집안 내력이다. 지홍 스님은 지난해 추진하던 불사(佛事)를 마무리하겠다며 의사들의 수술 권유를 거부하다 뒤늦게 수술을 받았다. 당시 지홍 스님은 수중에 돈이 없었다. 통장도 없었다. 수술비는 모두 불광사에서 공개적으로 비용 부담을 했다. 신도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출가자의 생활 보장=조계종단에 수행 기관은 있다. 본인이 원하면 선원을 찾아가 얼마든지 수행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출가자의 노후는 보장돼 있지 않다. 종단 차원에서 노후를 보장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수행이든, 전법이든 출가자의 본분에 전념하려 해도 노후가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불안은 종종 ‘부작용’으로 드러난다. 사찰의 재정을 책임지는 주지 자리를 맡으려 경쟁하고, 한 번 주지를 맡으면 ‘넉넉한 노후 자금’을 마련하려 한다. 그래서 주지 선거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홍 스님은 “종단이나 본사급 단위 사찰에서 출가자의 노후를 보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지금은 그게 안된다.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주지를 맡으면 따로 주머니를 차기 쉽다. 이게 공심(公心)을 가지고 살지 못하는 이유다. 불광사에서는 제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출가자의 의료비ㆍ노령연금ㆍ교육비ㆍ생활비 등의 비용 지원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지홍 스님은 “출가자가 젊었을 때는 신행과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느라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도반이나 사찰과 유대가 끊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출가자가 늙어서 혼자 외롭게 병드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민과 함께하는 사찰=불광사는 사찰에서 차량으로 15분 거리에 송파노인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복지사업의 일환이면서 출가자의 노후 보장과도 연결된다. 송파 지역의 독거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 조직도 만들 방침이다.

지홍 스님은 “불광사가 왜 송파에 있어야 하는가.나는 왜 불광사에 있어야 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물음을 저 자신에게 많이 던져왔다. 그리고 답을 얻었다. 사찰은 지역 주민과 함께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지역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 사회에서 불거지는 승가의 문제와 지역의 문제를 동시에 풀어가는 불광사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된다. 도심 포교당의 효시인 불광사를 창건한 광덕 스님(1927~99)은 처음에 도심에 사찰을 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 제도’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생과 함께해야 한다”며 ‘본래의 불교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산이 아닌 도심으로 들어갔다. 스승의 뜻을 설명하던 지홍 스님은 “저는 선원도, 강원도,승가대학도 가지 않았다. 계속 불광사에서만 살았다. 저는 포교를 통한 보살 수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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