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의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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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대학교의 축제가 일부과격파 학생들의 폭력시위로 중단되고 말았다는 보도를 접하는 국민의 심정은 한마디로 착잡하다.
서울대학은 우리나라에서는 으뜸으로 꼽는 학문의 전당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이런 대학의 축제가 폭력으로 얼룩지고 교직원에게까지 폭행을 가하는등 수제관계의 기본윤리마저 무시하는 작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그 구실이나 동기가 어떤 것이건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없다.
대학은 한 나라의 장래와 명련이 달려있는 지성의 터전이다. 대학은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자유롭게 모든 의견이 개진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상호이해를 촉진하고 자기가 모르는 새로운 시각이나 견해에도 접하게 되는 곳이다.
무릇 민주주의사회를 지배하는 원칙은 바로 이런 것인데 하물며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대학에서 자기의 의견과 다르다고해서 또는 자기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서 폭력과같은 반이성적인 수단에 호소했다는것은 이해할 수도, 용납될수도 없는 일이다.
더우기 놀라운 것은 학생들이 스승에게 돌팔매질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학생이 스승을 불신하고 사제관계가 믿음의 바탕이 없이 대립되는 판에서 대학의 권위와 질서는 일거에 무너지게 되고 마는 것은 자명하다.
일부 대학생들에 의한 반정부소요사태는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60년대에 들어서부터 시각된 대학가의 시위는 근20년을 두고 피상적으로 계속되어왔다.
최근들어서도 대학내에서 반정부시위와 관련된 주동학생이 구속되었다는 뉴스가 간헐적으로 보도되어 대학사태는 안정되지못 했다는 사정은 알고있었다.
우리는 이같은 소요를 선동하는 학생들이 극히 일부라는 사실도 잘 알고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위가 단순히 학원질서를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안정에 역행한다는 사실에 유념하지않을수 없다.
일부 과격파학생들이 아무리 데모를 선동한다 해도 무슨 변동이 생길까닭은 없다. 그리고 설혹 그런일이 일어났다해도 그 다음에 또 혼란과 사회의 불안은 또 어찌할 것인가.
물론 대학생들도 성년이고 유권자인이상 정치에 대한 소견을 밝힐수는 있다. 그러나 바로 같은 이유때문에 그들의 행동과 그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다 알다시피 10·25후의 아슬아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새공화국출범으로 우리는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어려운 곡절을 겪은끝에 찾은 것이기에 현재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안정은 더욱 소중한 것이다.
우리에겐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당장 우리의 발등에 떨어진 민생문제가 그것이다. 침체된 경제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초미의 과제인 것이다.
우리의 경제는 10·25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하다 금년 들어서 5∼6%성장될 가능성을 보이고있다. 이 수치만큼 성장이 된다해도 겨우 원상을 회복한 상태일뿐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국민과 정부 기업이 합심해서 최선을다해도 그경제가 쉽게 풀릴지 의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들이 소요를 일으켜 가져올 결과는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대학생들의 부모도, 우리국민 모두도 원치않는 일이다.
한편 학생운동은 본질적인 동기가 아무리 순수하다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어야한다. 대학생은 이성인이고 지식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체제자체를 부인하거나 폭력수단에 호소하게되면 학생운동의 근본마저 말살될수도 있는 것이다.
폭력은 폭력을 불러들인다. 폭역이 에스컬레이트되는 상황속에선 학생운동은 더이상 설자리를 잃고만다. 국민의 공감도 받지못하고, 학생의 본령을 잃고말면 실로 대학생은 그 존재마저 의심받게될 것이다.
그것은 대학생자신도 바라는 일이 아니다.
일부 학생들이 학원질서를 파괴하고 사회안정을 해치는 행위로 인한 이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이 기회에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설득하기에 앞서 대학생자신의 이성적판단과 분별과 성찰을 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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