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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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년을 두고 거듭되어온 쟁점의 하나였던 지방자치제 실시문제가 오랜만에 정계일각에서 진지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민한당이 17일에 연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민주발전을 위해 지방자치제 실시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그 구체적인 실시방안도 제시했다.
특히 이 제도 실시에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여겨졌던 지방재정의 자립도에 관해 한 참석자는 『재정적 기반이 빈약하면 빈약한 대로 가능한 범위안에서 실시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을 폈다.
지방자치제가 의회정치의 활성화와 함께 민주정치의 양대골격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지방자치란 지방주민이 자율적으로 그 지역의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가운데 민주시민의 양식과 자치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정치의 원천이며 구실』이라고도 한다.
제5공화국출범이후 적어도 원칙적으로 이 제도의 실시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 지방의회는 구성하지 않는다고 못박아버린 과거의 유신헌법과는 달리 새 헌법은 지방의회의 구성시기를 법률로 정하게 함으로써 정치세력간의 절충 여하에 따라지만 자치의 실시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자치제의 실시시기를 비롯해서 구체적인 실시방안에 대한 각 정치세력간의 의견접근이 문제였는데 민한당이 이번 세미나에서 나름대로의 몇가지 방안을 제시한 것은 합의를 위한 노력의 시작이라는 뜻을 띤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과거 지방자치의 시기상조론은 민주당 집권기의 짧은 시행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에서 연유한다. 읍·면 단위까지 지방의회가 생겨 갖가지 부조리가 지방의원들에 의해 빚어진 것은 사실이고 집권당의 입장에서는 지방자치제가 반대당의 지방조직 확대 등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꺼렸던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적 여건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사회적 제반 여건이 크게 달라졌다. 지방자치의 근간이 되는 지방공무원제도가 확립되어 있고 반대의 가장 큰 구실이 되어온 재정문제만 해도 자립도가 80%이상 되는 곳도 8개시에 달하게 되었다.
특히 예산규모가 8천7백44억원이나 되는 서울특별시의 경우 재정자립도는 95·5%이며, 예산규모 2천4백93억원의 부산시는 자립도가 96·2%에 이른다.
그동안 고등교육의 확충을 통해 민도가 높아졌고 주민들의 자기고장에 대한 관심도 커져 세비나 봉급을 안줘도 지방의원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란 말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치적에너지를 분산시킨다는 측면에서도 지방자치의 의의는 크다. 3만여명을 헤아린다는 정치지망생이 국회 한곳으로 쏠리는데서 오는 선거의 과열 현상을 예방하면서 이들의 경륜과 식견을 활용하고 단계적인 정치훈련을 시키기 위해서도 지방자치의 실시는 바람직할 것 같다.
이제도의 실시를 통해 얻는 가장 큰 이점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높이는데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근대화는 경제력의 신장만으로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경제성장에 상응해서 고양되 때 비로소 참다운 근대화·민주화가 이룩될 수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가 먼저 발달한 다음 중앙정부가 성립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순조롭게 발달해서 어떤 위기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성을 보여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때 터부친되기까지한 지방자치론이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의 대상이 된 것을 반가워하면서 헌법조항대로 지방재정자립도를 감안하여 단계적으로 지방의회가 구성될 때가 가급적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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