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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홈쇼핑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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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솔직히 똑 부러진 소비자는 못 된다. 이것저것 따지는 듯하다가도 엉뚱한 한두 마디에 홀랑 넘어가 절로 지갑을 연 ‘호갱님’(만만하고 어리석은 고객이란 뜻)이 된 기억도 적잖다. 그런 실패담에도 어쨌든 쇼핑은 즐거운 것이라 생각한다. 꼭 비싸고 귀한 물건을 사서가 아니다. 싸든 비싸든 가격 대비 품질 및 효용을 극대화하며 나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무언가를 남보다 선점할 때의 짜릿함과 즐거움이 있다. 물건을 쓸 때보다 살 때 발생하는 쇼핑의 쾌감이다.

 이런 내가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건 TV 홈쇼핑의 유혹에는 아직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온종일 선남선녀들이 나와 ‘이렇게 좋은 물건을 이렇게 싸게 파는데 안 사면 당신만 손해’ ‘째깍째깍 이제 몇 개 안 남았는데 놓치면 바보’ ‘(물건을) 잘 사는 게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고 외치는데도 말이다. 뭐랄까. 한번 빠지면 걷잡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랄까.

 나처럼 지극히 예외적인 시청자도 있지만 우리 TV 홈쇼핑은 날로 성장세다. 주변에도 홈쇼핑 매니어들이 여럿이다. 현명한 소비도 하지만 습관처럼 홈쇼핑 채널을 켜고 부지불식간에 ‘지른’ 물건이 산더미라며 푸념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사실 홈쇼핑뿐 아니다. 이미 TV 자체가 거대한 광고천국이다. 애니메이션 채널에선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광고가 이어진다. 정보 프로에서 건강 자문을 하던 의사가 홈쇼핑에 건너와 해당 건강식품을 판매한다. 이쯤 되면 프로그램을 위해 광고가 있는 건지, 광고를 위해 프로그램이 있는 건지 모호하다,

 정부가 연내 홈쇼핑 채널을 또 하나 만든다. 7번째 TV 홈쇼핑이다.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전격 추진한, 중소기업 전용 공영 홈쇼핑이다. 그간 소비자 단체들은 홈쇼핑 채널이 너무 많고,과도한 소비를 부추긴다고 비판해 왔으나 끄떡없다. 업계에서는 반발이 많다. 기존의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 채널이 프라임 타임대에 대기업 제품을 파는 등 제 역할을 못해서 문제라는 건데, 그렇다면 채널 신설보다 기존 채널 관리·감독이 먼저라는 것이다. TV홈쇼핑도 방송일 텐데 방송정책적 고려 없이 경제적 판단만 앞세운 것도 도마에 올랐다.

 그러고 보면 우리 TV 홈쇼핑들이 누리는 특별대우는 유난하다. 지상파 채널 중간중간 황금채널을 홈쇼핑이 휩쓴다. 거기에 이제는 공영방송 홈쇼핑까지 탄생한단다. 아마도 세계 방송계에 유례없는 TV 홈쇼핑 천국. 어딘지 씁쓸하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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