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내항여객선 공영제 도입에 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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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해상법연구센터소장·전 선장

오랫동안 기다리던 내항여객선 안전대책이 지난 2일 발표됐다. 세월호 사고 후 국회에 제출된 법안 70여 개는 대부분 규제강화 법안인 반면, 이번 안은 내항여객해운업의 열악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책도 포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병역법에서 운영되는 승선근무예비역제도(3년간 선박에 근무하면 병역의무가 면제됨)를 내항여객선에 도입, 젊은 선원들을 유인하여 내항여객선 선원의 고령화를 방지하겠다는 방안은 대표적인 체질 강화 정책이다. 내항여객선 공영제도 도입도 그 일환이다.

발표에 따르면, 교통수단이 꼭 필요한 낙도보조항로 26개와 취약항로 4개를 포함해 30개 항로에는 공영제를 도입해 국가가 직접 여객선을 소유하여 운항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육상도로교통에 버스공영제와 준공영제가 있다. 준공영제는 버스회사들이 버스를 자신이 그대로 소유하면서 운영하고, 영업적자 등을 국가가 보조해주는 것이다. 반면 공영제는 국가가 버스를 직접 소유해 운영한다. 영업수지가 맞지 않아도 국고에서 지원이 된다. 버스회사의 수지가 맞지 않아 영업이 어려운 지역에 버스 서비스를 국가가 공급해주는 공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공영제를 하려면 우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여객선을 소유하고 운항해야 한다. 현재 99개 항로에 운항하는 173척에 달하는 내항여객선을 모두 정부가 소유하고 운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여객선사의 사유재산권도 보호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우선 30개 항로에서 공영제를 먼저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공영제와 유사한 제도를 해운법에 따라 낙도보조항로에 이미 실시하고 있다. 낙도보조항로 여객선을 국가가 소유하면서 입찰을 통해 여객선사에 운항을 맡기는 운항위탁 형태다. 낙도보조항로에는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여객선을 소유하면서 운항은 여객선사가 하고, 정부가 여객선사에 적자를 보전하는 정책을 1956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26개의 낙도보조항로(26척 운항)에는 연간 100억원 이상의 국고가 투입된다. 국가가 이미 일부 여객선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낙도보조항로에 대한 공영제는 쉽게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선박운항위탁계약을 해지하거나 계약기간이 종료될 때부터 선박을 회수해 국가가 직접 운항하면 된다. 국가는 직접 선원을 채용해 교육시키고 운항 준비작업을 하게 된다. 새로운 형태의 여객선운항공사 설립도 논의될 것이다. 선원들은 모두 국가 또는 공사 소속이기 때문에 더 나은 교육과 안전관리를 받게 돼 선박의 안전은 향상될 것이다. 공영제를 도입하게 되면 안전보다 수익을 우선시해 불법 운항을 하는 잘못된 행태는 없어질 것이다. 선원의 자질도 향상되고 선원의 봉급도 적정한 수준으로 인상돼 사기도 높아질 것으로 판단된다. 낙도보조항로에 취항하는 선종은 대부분 여객과 동시에 개방된 적재구역에 차량 등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차도선이다. 이 선박은 차량 적재 때문에 상당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공영제가 되면 선박 운항의 안전성이 확보돼 사고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공영제는 극복해야 할 과제도 가지고 있다. 공영제 대상 선박을 국가가 소유하면서, 운항도 하고 관리도 할 것인지 아니면 이 중 일부만 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다. 현재는 국가가 소유하면서 운항은 사업자들이 하는 형태다. 공영제를 하면 운항도 국가가 맡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관리도 국가가 할 것인지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현재 낙도보조항로의 선박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 국가는 소유자로서의 책임만 부담하고, 운항과 관련한 책임은 여객선사들인 운항자가 부담한다. 그런데 운항도 국가가 맡게 되면 여객에 대한 손해배상책임과 같은 운항자로서의 책임을 국가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금전적인 배상은 책임보험 가입으로 처리될 수 있지만 만약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국가는 상당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공영제는 한계도 갖고 있다. 이는 당장 실시돼 효과를 볼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전략이다. 또 적용 대상 선박이 173척 중 30척에 지나지 않는다. 안전운항상 문제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세월호와 같은 카페리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내항여객선의 체질 강화를 위해 다양한 단기적 지원정책을 실시하면서 동시에 내항여객선에 대한 안전감독 등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카페리에는 해사안전법을 개정해 외항상선에 적용되는 안전관리체제(ISM Code)를 실시함으로써 선박은 물론 여객선사의 선박에 대한 안전기준을 동시에 높여야 한다. 여객선사가 영세해 자체 안전관리가 어려운 경우 선박관리회사제도를 활용해 이들에게 안전관리를 위탁하면 될 것이다. 안전 강화 정책과 지원 정책을 조속히 실시하면서 중장기적인 공영제를 정착시키면, 내항여객해운도 우리나라 외항해운처럼 해상안전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해상법연구센터소장·전 선장